1 어린양이 일곱 번째 봉인을 떼시자, 하늘이 갑자기 고요해졌습니다. 이 완전한 정적은 약 반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2-4 나는 하나님 앞에 늘 대기하고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는데, 그들의 손에 일곱 나팔이 들려 있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들고 와서 제단 앞에 섰습니다. 그는 엄청난 양의 향을 받았는데, 이는 보좌 앞 금제단에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백성의 기도를 바쳐 올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향으로 묶인, 거룩한 이들의 기도가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연기처럼 굽이쳐 올라갔습니다.
5 그 후에 그 천사는 향로를 제단에서 나오는 불로 가득 채워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러자 천둥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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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영국에서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도난당했었던 120만 파운드(약 21억 원) 상당의 바이올린을 되찾았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도난된 바이올린은 이탈리아의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1696년 제작한 것으로 전 세계에 450대밖에 없는 명품이었는데, 경미한 흠집 외에는 특별한 손상은 없이 되찾았습니다. 도난당했던 귀한 바이올린은 악기를 훔친 이들이 바이올린의 가치를 알지 못해 인터넷 카페에서 100파운드에 처분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도둑들은 귀한 물건을 훔쳤지만, 정작 그 물건의 가치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도둑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의 참된 가치를 알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특별히 믿음 안에 사는 우리도 종종 그런 실수를 저지릅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기도의 가치를 모르고 기도하고, 가치를 몰라서 그 귀한 기도를 잘못 사용했습니다.
일곱째 인 … 클라이막스 … 하늘의 침묵
오늘 본문은 일곱째 인을 떼시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마지막 인을 떼시는 것은, 두루마리를 열어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가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완성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대 위에 또 다른 역할을 맡은 일곱 등장하였습니다.
일곱째 인이 떼어질 때, 지금까지 떼어진 여섯 인과는 다르게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다른 인이 떼어질 때에는 '오라'는 우레 같은 큰 소리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침묵과 고요가 찾아온 것일까요? 첫째로 이것은 정말 웅장한 자연이나 위대한 명작을 만났을때 느껴지는 전율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펼쳐오신 역사가 한 단락 매듭을 짓게 되는 하나님의 클라이맥스, 그 놀라운 구원의 완성 앞에서 온 세상이 전율하며 잠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금향로를 가진 천사가 등장했습니다. 이 천사의 등장은 갑자기 끼어든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듯, 이 천사는 하나님 보좌 앞 제단으로 향로를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이 향로에는 이 땅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가 담겨있습니다.
기도의 향기
하나님이 계신 하늘 보좌는 결코 조용한 곳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찬송이 울려퍼지는 곳이며, 재앙 때마다 우레 같은 고함소리가 터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요가 찾아 온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그 소리를 놓치시지 않겠지만, 그래도 성도의 작은 신음까지 놓치지 않고 들으시도록 하늘이 고요해진 것입니다.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도록 그렇게 영화롭게 울려퍼지던 찬양조차 잠깐 멈춘 것입니다. 이토롤 하나님의 나의 기도를 집중해서 들어주십니다, 듣는 것에만 집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좌 앞에 올려진 기도는 이제 제단의 불과 함께 땅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러자 이 땅에서는 그렇게 내려오는 기도의 응답이 천둥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의 형태로, 땅을 뒤집고 세상을 울리며 내려 온 것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엄청난 능력과 가치를 지녔습니다. 고통가운데서 어쩔줄 몰라하며 부르짖는 나의 기도에 하늘에서는 찬송마저 멈추며 하나님께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려진 기도는 세상을 울리고 뒤집으며 응답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쩌면 고난 가운데 성도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이 되는지 어떤지 의심이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랬는데 이 환상을 통해 내 기도가 하나님에게 이렇게 소중하게 드려지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물론 나의 기도는 부족합니다. 아니 우리의 기도는 모두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그 자체로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지 못하고, 제단에 바쳐진 향과 함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금향로에 담아 금단에 드려질 정도로 귀하게 받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완결짓기에 앞서, 내가 드렸던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7장에서 나를 돌보시는 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은, 본문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올려드린 기도마저 하나님께서 귀 기울이고 계심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해 성도가 재앙이나 환난가운데서도 견딜 수 있다면, 내가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가 있어서 하나님을 기대하고 바라며 위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독자들에게 이런 환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로 모든 것을 구하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점진적 평행법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일곱 나팔을 가진 천사들이 등장합니다. 마치 일곱 인의 재앙이 끝나자, 다시 일곱 나팔의 재앙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요한 계시록은 그렇게 재앙이 연달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히브리적 표현기법의 하나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적 문학양식에서는 강조점을 중간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헬라어 카이(K, 영어 K)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카이애즘(Chiasm) 또는 키아즘이라고 부르고 우리 말로는 교차 병행구조라고 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2~14장은 은사장이고 사랑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의 종류에 대해, 13장은 사랑에 대해, 14장은 다시 은사로 돌아와 은사 사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구성된 구조 속에서 13장의 사랑의 역할은, 은사를 구하거나 사용할 때 사랑의 동기로 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즉 사랑 장을 중심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서신보다 좀 복잡하지만, 요한계시록의 4장에서 22장은 동일한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그림입니다. 마치 6개의 삽화를 그려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림이 아니라 글로 표현해서 열거한 것입니다. 이 그림들은 각 그림마다 초림과 재림 사이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초대교회 시대가 더 많이 보이도록 그려졌다면, 뒤로 갈수록 종말의 시대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만 그림인 20~22장에는 종말과 천국에 대해서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점진적 병행법(Progressive Parallelism)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의 구분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또 내가 보니~”라는 문구를 통해 나누어집니다. 이 문구에는 헬라어 kai ,즉 영어의 and, now로 번역 되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이 단어에 의한 구분은 시간 순서보다는 다른 장면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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