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er than Honey | 말씀곱씹기 단맛이 날 때까지/갈라디아서 [자유케 하는 복음]

갈라디아서 5장 7-10절

Apis 2022. 10. 2. 01:45

7-10 여러분은 아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러분의 길에 끼어들어, 여러분을 참된 복종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습니까? 그러한 탈선은, 애초에 여러분을 경주로 불러 주신 분께로부터 것이 아닙니다. 말을 그저 귀로 듣고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약간의 누룩이 순식간에 반죽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주님은 마음 깊은 곳에 여러분이 변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여러분을 흔드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것입니다.

 

*****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교인들을 향해 진지한 호소와 눈물섞인 탄식으로 거듭 말하며 그들에게 복음 안에 머물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갈라디아교인들은 모두 성인들인데, 각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결정하고 책임지게 놓아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대체 바울 사도은 갈라디아교인들에 대한 미련을 이렇게까지 버리지 못하고 붙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그들을 위해 눈물을 담은 탄식과 진심을 담은 호소를 멈출 수 없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교인들이 지금까지 아주 잘 달리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또 주님께서 바울 사도 자신의 마음에 갈라디아교인들이 다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이렇게 염려를 담아 자꾸 말하는 것은 적은 누룩이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지금은 작게 보이는 잘못된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전체를 변질시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처럼 분명 갈라디아교인들 대부분은 변절되지 않고 믿음을 지키겠지만, 갈라디아교인들 안에서 누룩처럼 그들을 변질시키려 흔드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은 복음을 듣고, 복음에 합당한 반응으로 믿음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은 확신하며 믿음의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 사랑을 확신하며 믿음의 길을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율법주의라는 매력적인? 방법이 보인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들었던 예수님에 대한 말씀 속에서 나오는 베드로가 율법주의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방식을 지키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이들에게 율법주의자들이 이것이 [온전한 신앙의 길]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제대로 된 구원을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누룩처럼 그들 안에 퍼져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나에게 적용시키면, 나는 과연 온전히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내 안에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내가 믿고 따르는 신앙의 지도자들이 잘못된 모습을 보일 때, 내가 그것이 잘못인 것을 분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영 자신이 없습니다. 내 지혜와 판단의 수준으로는 온전한 분별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은 불필요한 걱정입니다. 이 말이 내가 바른 진리 안에 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분명 나름 노력을 해야 하지만, 위태할 때에 나를 지키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안에  갈라디아교인들이 다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가 받은 확신은 갈라디아교인들에 대한 확신이었지만, 함께 모든 믿는 사람들에 대해 주신 확신입니다. 이것은 나에 대한 확신이기도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생명으로 옮겨주신 하나님의 능력은 반드시 일을 완성하십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살아갈 때, 불필요한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주를 때, 나는 오늘도 믿음 안에서 담대하게 걸음을 내딛으며, 믿음의 길을 잘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