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성경 | 갈라디아서 2 장 19-21절]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고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율법의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이 내게 방법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나를 완전히 동일시했습니다. 정말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내 자아는 더 이상 내 중심이 아닙니다. 나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의롭게 보이거나 여러분에게서 좋은 평판을 얻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보는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나는 이 삶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준수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교로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누리는 자유를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가 율법을 지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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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 이하로 장황하게(?) 나누었던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갖는 것은 참 어렵고도 참 쉬운 길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논리와 상식에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상식은 죄를 지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논리는 착한 일을 한 사람이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그런 상식과 논리와 다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인 된 실체를 마주한 사람은 상식으로는 풀지 못하는 죄의 권세를 보게 됩니다. 인생의 실패를 맛보고 절망에 몸부림 치는 사람은 논리로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절망 앞에 서면 은혜가 보이고, 죄의 권세를 마주하면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게 됩니다. 그러면 복음을 믿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믿음은 절망의 상황, 위기의 순간을 지나다가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참 가치있는 무엇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치있는 것을 붙들기 위해, 손에 쥐고있던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믿는 사람들에게 삶의 전환점(Turning Point)을 만듭니다. 그리고 정말 가치있는 것을 보며 살기때문에 다시 이전과 똑같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말한 [그리스도의 삶이 알려준 방법]을 따라. [살도록 해주시는 은혜를 따라] 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믈론 복음을 믿어도 우리는 아직 완전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삶의 방향은 이전과 분명하게 달라집니다. 추구하는 가치는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지 것을 바울 사도는 [십자가에 못박혔다]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면, 이 후로는 더 이상 내 중심에 내 자아=이전의 가치체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젊음/부/권력)을 갖춘 두사람이 각자 찾아왔었습니다. 한 사람은 공개적으로, 또 한 사람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밤 중에 찾아왔습니다. 이 두사람은 모두 [영생=참 가치있는 삶]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부자 청년 관원은 근심하며 돌아갔고, 니고데모는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제자로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 관원은 지금 가진 것들을 더 오래 누리기 위한 영생을 찾았고, 니고데모는 정말 다른 가치(=영생)가 존재하는지 - 영생 자체를 알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고도원님의 아침 편지에서 Rhonda Byrne의 시크릿(The Secret)이란 책을 인용한 내용이 나옵니다. [현재 상황이나 환경은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생각의 결과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현 상태을 바라보면서 ‘이게 나야’라고 말한다. … 하지만 그건 당신이 아니라, 과거의 생각과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리고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생각과 행동이 미래의 결과를 만든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생각과 행동을 바꾸면 그로부터 삶이 바뀌고 미래가 바뀝니다.] 믿음은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행동을 바꿉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 인생의 결국을 바꿉니다.
우리도 영생을 찾아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내가 추구하는 영생이 지금까지 누린 것들을 더 오래 누리기 위한 - 이전 가치체계의 연장인지 아니면 이전의 가치체계(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린 선택은 영원까지 이어질 미래의 결과를 결정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붙들었던 모든 가치체계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물과 성령을 통해 가능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나의 자아가 예수와 함께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신 사신 것을 경험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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