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er than Honey | 말씀곱씹기 단맛이 날 때까지/갈라디아서 [자유케 하는 복음]

갈라디아서 2 장 20-21절

Apis 2022. 8. 28. 14:28

[메시지성경  |. 갈라디아서 2 장 20-21절]

그리스도의 삶이 내게 방법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나를 완전히 동일시했습니다. 정말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내 자아는 더 이상 내 중심이 아닙니다. 나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의롭게 보이거나 여러분에게서 좋은 평판을 얻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보는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나는 이 삶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준수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교로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누리는 자유를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가 율법을 지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

 

바울 사도는 자신이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고심하고 몸부림도 쳐봤지만 그럴수록 자신 안에 존재하는 [죄]에 의한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가리켜 자신이 죄에 팔렸다고, 죄의 감옥에 갇혀 지냈다고 표현합니다(로마서7장 14~24절).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선을 행할 수 없는 자신의 죄인 된 실체를, 결국 죄로 인해 넘어지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했습니다. 그런 몸부림과 절망의 자리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사도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제시된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 걸음을 내딛자 비로소 참된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죄된 실체를 마주해야 은혜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죄가 없으면, 죄를 알지 못하면 복음은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죄로 아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 죄인 된, 죄와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죄가 죄로 보이지 않습니다.  바쁜 삶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볼 여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복음을 누릴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처럼 복음의 풍성한 은혜를, 참된 자유를 경험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말씀은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알게 합니다. 말씀은 나의 생각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줍니다. 무엇보다 말씀은 나의 관심을 세상의 분주하고 번잡함에서 본질적인 문제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수술용 메스처럼 날카로워서, 의심이든 변명이든 무엇이나 갈라내고, 우리 마음을 열어서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꿰뚫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달아날 수 없습니다].(히브리서 4장 12-13절) 그런데 이런 말씀의 능력을 누리려면 내가 말씀을 읽을 때, 말씀도 나를 읽도록 해야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 시킵니다](고린도후서10장 4-5절). 

 

말씀은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을 때는 마치 반가운 이의 편지를 읽는 것처럼 편하게, 솔직하게 그 순간을 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편지를 읽으면 떠오르는 추억처럼, 마음을 채우는 느낌을 풍성하게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숙제하듯이, 마치 To do list 처럼 읽으며 하나님을 위해 해야할 일들의 목록을 찾는다면,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는다면 말씀을 잘못읽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런 말씀의 능력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율법을 준수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교로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누리는 자유를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어보려고 발버둥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바울 사도는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바울 사도의 경험이 담긴 고백을 통해 굳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위해 죄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은 누군가의 경험으로 대신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죄를 죄로 깨달은 다음에야 비로소 복음은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말씀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살아 있고 힘이 있는 말씀]이 내 속에 들어 올 때, 그 말씀이 나의 죄인 됨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내가 죄인 임을 고백하게 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