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복강을 건넌 야곱은 멀리서 오고 있는 에서의 무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아직도 에서가 자신을 환영할지 적대시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나누어 세웁니다. 제일 앞에는 빌하와 실바, 그리고 그녀들이 낳은 아들들을 세웠습니다. 그다음에는 레아와 레아가 낳은 아들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제일 뒤에는 라헬과 라헬이 낳은 요셉(아직 베냐민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세운 순서는 자녀들을 향한 야곱의 마음의 순서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야곱 때문에 요셉과 형제들의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가족들을 줄 세우고서야 야곱은 에서에게 일곱 번 절하고 경의를 표시합니다. 그러자 에서가 야곱을 향해 달려옵니다. 그리고 야곱을 안고 두 사람은 함께 울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적대시한 것이 아니라, 잃었던 동생을 다시 만난 감격과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재회의 감격을 나눈 에서의 눈에 야곱의 처자식이 보였습니다. 야곱은 가족들을 에서에게 인사시킵니다. 그리고 난 후 에서가 야곱에게 받았던 선물을 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이미 자신의 것도 풍족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에서를 극구 만류하며 선물을 받아달라고 간곡하게 청합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에서는 선물을 받기로 하고, 야곱을 자신의 장막으로 같이 가자고 권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주로 부르고, 스스로를 종으로 청하니 아마 자신과 같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또 이미 세력을 형성한 에서의 입장에서는 동생을 품어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곱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누구의 밑에 있고 싶지 않아서 장인 라반을 떠나온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세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다시 형 에서에게 묶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마음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돌려서 말합니다. 자신은 속도를 빨리 할 수 없으니 에서에게 먼저 떠나라고 부탁합니다. 에서의 본거지 세일에서 만나자고 인사합니다. 순진한 에서는 이 말을 믿고 자기 사람을 남겨두어 야곱을 돕겠다고 하지만, 야곱은 이 마저도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세일에 갈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항상 이렇습니다. 자신이 계산하고 계획하고 일을 진행하지만, 말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따를 것처럼 말합니다. 형 에서와 세일로 가는 약속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린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28장 벧엘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 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서원하였습니다.
또 32장에서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나온다는 소식에 기도하면서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 하셔서 가는 길이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간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라반의 추격도, 에서의 위협도 없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가나안 땅에 들어섰습니다. 이전의 경험으로 생각하면 가나안 땅은 크게 문제 일으키지 않으면 아직은 살만한 동네였습니다. 야곱의 계획과 계산에 따르면 주변 부족들은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에 제법 괜찮은 이들이었습니다. 달라진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시 계산하자 이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장막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로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보다는 숙곳에 머물며, 그 땅을 사서 거기에 장막을 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왜냐면 벧엘로 가면, 아버지의 장막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곳에 단을 쌓고 이름하기를 엘엘로헤이스라엘(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강하시다)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계산대로 도와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 말씀드렸듯이 저는 수준이 비슷한 야곱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야곱의 이런 모습을 보면 제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수준이 무엇인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따져보고 계산해 본 다음 모르는 척 멈칫거리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욕심이 채워진 자리에서 엘엘로헤이스라엘을 찬양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께만 그런 것이 아니라 20년 만에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형을 상대하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 그런데 정말 야곱이 좋은 이유는 이런 수준의 야곱을 결국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수준의 믿음의 사람으로 바꾸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꼼수를 짜내어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내시는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계산과 계획을 생각해내려는야곱 같은저에게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실 하나님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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