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er than Honey | 말씀곱씹기 단맛이 날 때까지/갈라디아서 [자유케 하는 복음]

갈라디아서 3장 27-29절

Apis 2022. 8. 28. 23:16

[메시지성경  |  갈라디아서 3장 27-29절] 

27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세례는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깨끗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례는 또한 성숙한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옷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생명, 곧 하나님께서 처음 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28-29 그리스도의 집안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 사이에서 여러분은 모두 평등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한가족이니, 바로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언약의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

 

우리 대부분은 침례가 아닌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국교회는 침례교회를 제외하고는 다 세례를 행하고, 한국에는 침례교회의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아마 주변에서 침례를 받은 분들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침례를 행하는 것을 보면, 이따금 ‘나도 침례를 받았다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침례와 세례의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물 속에 온 몸을 담그는 침례가 세례보다 더 선명한 기억을 남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세례를 통해 나에게 새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내가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곁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고 나면, 모두가 그리스도를 덧 입은 상태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 우리는 노랗고 까맣고 하얀 모습이었지만, 세례 이 후로는 구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남자이었고 여자이었을 수 있지만, 신분이 높았을수도 낮았을 수도 있지만. 나름 의롭고 도덕적으로 살았을 수도 있고 못되게 나쁜 짓만 하며 지냈을 수 도 있지만… 이제는 똑같아 졌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을 수도 있고,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었을 수도 있고, 남들보다 성경을 많이 배웠을 수도 있고 …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모두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 똑같은 평등은 하나님이 나를 대하실 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에 대해 반응하실 때 그러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니 저는 신학을 일찍 공부한 덕분에 이런 비교의식에 확실하게 눌려 살았습니다. 대학에 갓 들어가서 만난 친구들 중에 정말 탁월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친구들 속에서 학교를 잘못 선택했다는 고민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저런 친구들이 해야 할 것이라는, 적어도 저 수준은 되어야 하나님도 쓰실 것이라는 불편한 눌림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고 기도하는 것도 참 부담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나를 내가 생각하는 대로 바라보시지 않으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 중 그 누구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신 적이 없으십니다.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 모두가 예수를 덮어쓴 모습으로만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이 보여지고, 똑같게 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찾아 나누어도 우리의 깊은 속마음은 나보다 믿음(?)이 좋아보이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설마?] 라는 생각을 내려 놓지 못할 수 있습니다. 숱하게 기도응답을 받았음을 간증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래도 차이가 있던데 … 라는 미련을 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야고보 장로는 그의 서신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 그리고 이 말씀 바로 앞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는 말씀으로 우리도 기도하면 된다고 밝히고 계십니다. 그래도 나는 의인이 못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까봐,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풀어줍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헤아리실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예컨대,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으나…]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내가 그들과 다른 것은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살았던 사도들은 망설임없이 […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 3:7)]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힘이 좋은 자석에 붙어있는 쇠붙이는 다른 쇠를 붙게 할 수 있습니다. 왜 다른 쇠가 붙지 않는가는 온전히 붙어있는지를 확인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 … 차별이 없습니다. … 모두 평등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맺고 있으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언약의 약속에 따른 상속자]의 신분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나는 아직도 왜 이러지… 이런 나를 어떻게 하나님이 … 이런 생각들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방해하는 속삭임입니다. 이런 속삭임이 들릴 때 [나는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었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눈에는 내가 그리스도로 덧입혀져 보인다는 것을 믿고 살게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