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er than Honey | 말씀곱씹기 단맛이 날 때까지/룻기 | 빈 손을 채우시는 사랑

룻기 4장 1-8절

Apis 2024. 5. 27. 22:30

 1 보아스는 곧바로 광장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더 가까운 친척’, 곧 앞서 보아스가 말했던 그 사람이 지나갔다. 보아스가 말했다. “여보시오, 잠시 이리로 와서 좀 앉으시오.” 그가 와서 앉았다.

2 보아스가 성읍 장로들 가운데 열 명을 함께 불러 모아 놓고 말했다. “여기 우리와 함께 앉아 주십시오. 우리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들이 와서 앉았다.

3-4 보아스가 친척에게 말했다. “우리 친척 엘리멜렉에게 속한 토지를 얼마 전에 모압 땅에서 돌아온 그의 과부 나오미가 팔고자 하오. 그대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소. 원한다면 그대가 그 땅을 되사시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과 성읍 장로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처리하면 될 것이오. 우선적으로 구제할 권리가 그대에게 있소. 그대가 원하지 않으면 내게 말하시오. 그러면 내가 알아서 하겠소. 순서상 그대가 먼저고, 나는 그다음이오.” 그러자 그가 “내가 사겠소” 하고 말했다.

5 이에 보아스가 덧붙였다. “그대도 알다시피, 그대가 나오미한테서 그 밭을 살 때는 우리 죽은 친척의 과부인 모압 사람 룻도 함께 취해야 하고, 구제하는 자로서 그 여인과의 사이에 자녀를 낳아 그 집의 유산을 물려받게도 해야 하오.”

6 그러자 그 친척이 말했다. “아, 그건 못하겠소. 자칫하면 내 집의 유산이 위태로워질 테니 말이오. 그냥 그대가 사시오. 나는 못하겠으니, 내 권리를 그대한테 넘기겠소.”

 

7 옛적 이스라엘에서 사람들이 재산과 유산 문제에 관한 공식 업무를 처리할 때는, 자기 신발을 벗어 상대방에게 주곤 했다. 이스라엘에서 이것은 인감도장이나 개인서명과 같은 것이었다.

8 그래서 보아스의구제하는 친척그냥 그대가 사시오하고 말한 뒤에, 자기 신발을 벗어 주는 것으로 계약에 서명했다.

 

*****

 

성문 앞으로 간 보아스

보아스는 아침이 되자 바로 성문 앞 광장으로 나가 앉아있었습니다. 당시에 성문 앞은 이렇게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성문 앞에는 마을의 장로들이나 어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여러 가지 일들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업무를 보려고 사람을 만나야 할 경우 보통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자리를 잡고 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다리던 바로 "그"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를 본 보아스는 그 사람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성읍의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 기업 무를 자

보아스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엘리멜렉에게 속한 토지를 얼마 전에 모압 땅에서 돌아온 그의 과부 나오미가 팔고자 하오. 그대가 가장 가까운 친척이니 원한다면 그 땅을 그대가 되사시오. 그대가 먼저이고, 내가 그다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훗날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왕궁 곁의 나봇의 포도밭을 탐냈지만, 나봇의 거절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땅의 소유주가 바뀔 기회가 있는데 그것은 땅의 소유주가 자손이 없이 죽을 때,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지금 엘리멜렉의 땅은 나오미가 소유해야 하지만, 아마 모압으로 갈 때 그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렸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오미에게는 그 땅을 되사올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되사올 금전적인 능력은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엘리멜렉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나서서 그 땅을 되사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사온 땅은 (엘리멜렉의 후손들이 남아있지 않으면) 나오미에게 주어 그 땅을 사용하게 하고 나오미가 죽으면 그때에 땅의 소유권 자체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멜렉의 후손이 있거나 또는 후사를 나을 수 있는 아내나 며느리가 있는 경우, 땅을 되사온 친척은 그와 동침하여 엘리멜렉의 집안을 이을 후손을 만들어 주고 그 후손이 장성하면 그 땅의 소유권을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기업무를 자, 율법의 명령 vs 나의 이익

이 제안을 받은 가까운 친척은 땅을 넓힐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자신이 나서서 그 땅을 되사오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보아스는 그 친척이 생각 못한 부분을 되짚어 주었습니다. 그대도 알다시피, 그대가 나오미한테서 그 밭을 살 때는 우리 죽은 친척의 과부인 모압 사람 룻도 함께 취해야 하고, 구제하는 자로서 그 여인과의 사이에 자녀를 낳아 그 집의 유산을 물려받게도 해야 하오

 

이 말을 들은 그 친척은 바로 말을 바꾸어 대답하였습니다. 아, 그건 못하겠소. 자칫하면 내 집의 유산이 위태로워질 테니 말이오. 그냥 그대가 사시오. 나는 못하겠으니, 내 권리를 그대한테 넘기겠소. 무슨 말입니까? 임신 가능한 며느리가 있다면, 땅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으니 괜히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기업무를 자의 책임은 율법에 정해진 책임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그 책임을 다해서 자신의 재산이 늘어나면 그것을 하겠지만, 손해를 보면서는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나는 내 입장에서 최선을 선택할 뿐 

룻이 보아스와 맺어져야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문제를 넘어서라도 일을 이루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내가 나빠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핑계로 내가 잘못된 일을 행하려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만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 친척 된 사람의 거절을 미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이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친척된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그 율법을 지키고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면 율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확실한? 원칙이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물질적 이익이 우선이라는 아주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물질(맘몬)을 섬기는 것입니다. 

 

아무개여... 당신은 꽃인가? 몸짓인가?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사람을 성경은 아주 특별하게? 대우하고 있습니다.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보아스가 이 사람을 부르는 장면이 이렇게 묘사됩니다.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아무개여 라는 호칭은 오직 이곳에만 나오는 호칭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 사람들은 많이 나오지만, 실제로 대화를 하면서도 그 이름이 이렇게 가려져서 아무개로 나오는 본문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닌 물질을 자신의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 사람을 아무개여라고 부르며, 마치 이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그의 시 [꽃]에서,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존재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어서 꽃과 같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존재하지만, 룻이나 보아스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의미 없는 몸짓으로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물질적 이익을 앞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 있게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다른 것들도 소중하지만 그 모든 것들의 가치는 상대적일 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신 하나님과 견줄 수 없고 견주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를 존귀히 여겨 주시며 하나니을 사랑하는 자라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의 가치를 분명하게 깨닫고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그런 원칙으로 일생을 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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