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er than Honey | 말씀곱씹기 단맛이 날 때까지/출애굽기(~ing) |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

출애굽기 4장 24-26절

Apis 2024. 7. 9. 22:30

24-26 그들이 이집트로 돌아가다가 밤에 야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셔서 그를 죽이려고 하셨다. 십보라가 부싯돌 칼을 가져다가 아들의 포피를 자르고 그것을 모세의 몸에 갖다 대며 말했다. “당신은 내게 남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놓아주셨다. 십보라가 남편이라는 표현을 것은 할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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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애굽에 있는 형제들을 찾아보기 원한다고 말하고서인 가족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길을 떠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애굽에서 모세를 죽이려 하던 이들이 다 죽었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모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가족들과 함께 길을 가다 날이 저물어 천막을 치고 그곳에 밤을 보내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밤에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사건은 성경에 나오는 난제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해내라고 하시고서, 애굽을 향해 가는 모세를 죽이려 하신 그래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더군다나 본문의 사건은 단 3절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곳에서 다시 언급하지 않으시기에 이해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일성서공회에서는 본문에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보내고는 하나님 몸소 그를 죽이려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따로 명시해 두었습니다.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일수록 더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원뜻을 알 수 없으니 각각 자신의 생각으로 풀어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실력이 부족해서 이 말씀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견해들 중 비교적 납득이 되는 견해를 선택해서 받아들이고, 본문이 그런 의미를 가졌다면 그 속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십보라가 부싯돌 칼을 가져다가 아들의 포피를 자르고 그것을 모세의 몸에 갖다 대며 말한 것입니다. 즉 오늘 본문 속 사건은 할례와 연결지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십보라가 자른 아들의 포피단수형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 두 아들-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내 십보라가 할례를 행한 것은 그들 중 하나입니다. 

 

이런 내용에 근거해서 본문을 추론해 보면, 모세는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후 첫째 아들 게르솜을 낳고서, 게르솜이 난 지 8일 되었을 때에 할례를 행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모세도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었고* 자신을 히브리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첫째 아들 게르솜에게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할례를 행했으나, 아직 아무것도 어린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은 당시 보건 수준으로 매우 위험한 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  대해 장인 이드로와 아내 십보라에게 심한 비난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들은 모세는 갈등 혹은 두려움으로 인해 둘째 아들 엘리에셀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바로의 공주가 나일 강에 놓인 갈대상자에서 모세를 꺼내어 들었을 때, 바로의 공주는 곧 그 아이가 히브리아이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과 애굽사람이 보자마자 알 수 있을 만큼, 그것도 아이를 보았을 때 알 만큼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공주가 알 수 있었다는 것은 아이의 몸에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특징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모세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고 애굽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길을 떠난 모세가 천막을 치고 밤을 보내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십보라는 이 일이 할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싯돌 칼로 엘리에셀에게 할례를 행하고, 그것을 모세의 몸(발로 표현되었는데 성기라고 추정합니다)에 가져다 댔습니다. 그러자 모세를 죽이려 하시던 하나님이 모세를 놓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셨지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떠나는 모세의 둘째 아들 엘리에셀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이유로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왜 사명을 맡기시고 뒤늦게 할례를 구실로 모세를 죽이려 하셨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중요한 사명을 맡았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쉽게 큰 일을 위해서 작은 잘못을 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크고 중요한 일이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원칙과 방법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큰 일을 감당할 사람에게 그 정도는 허용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만이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맡은 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정결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셔서 원하는 대로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은 그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감당할 자에게 구하는 것은 여호와 앞에 성결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탁월함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행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런 원칙을 잘 깨달았던 종교개혁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CORAM DEO를 삶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도 기꺼이 할 만한 일을 행하며 사는 삶, 그런 삶의 모습으로 내 삶이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