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er than Honey | 말씀곱씹기 단맛이 날 때까지/출애굽기(~ing) |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

출애굽기 3장 1-5절

Apis 2024. 6. 11. 22:40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다

 1-2 모세는 그의 장인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이끌고 광야 서쪽 끝으로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가 활활 타오르는데도 그 나무가 타 버리지 않았다.

3 모세가 말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믿을 수가 없군! 놀라운 일이다! 어째서 떨기나무가 타 버리지 않는 걸까?”

4 모세가 멈춰 서서 살피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가 대답했다.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5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이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님을 묘사할 때 하나님을 마치 사람의 모습인 것처럼 하나님의 손으로 / 하나님이 귀 기울이고... 등 마치 우리가 행동하는 것과 비슷하게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신인동형]이라고 하는데, 결코 결코 하나님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하나님께 우리 인간의 모습을 입혀서 표현하는 표현기법 일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런 표현을 읽어서인지, 나는 마치 하나님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떠올릴 때, 나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나처럼 반응하시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합니다. 이런 염려의 끝에 놓인 나의 가장 어리석은 생각은 하나님의 능력을 내 수준에서 이해하고 제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준을 나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내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수준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때, 내 안에 자리하는 두려움 중 가장 큰 것은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놓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싸인을 센스하지 못할까 봐, 하나님의 시간을 깨닫지 못하고 그때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싸인과 때를 놓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좋은 기회들을 잃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뿌리는 먼저는 하나님을 내 수준으로 바라보는 나의 잘못된 믿음에 근거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처럼, 또 내 곁의 누군가에게 전한 나의 말이 잘못 전달되는 것처럼,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나와 같은 수준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은 한번도 하나님이 하시기 원하시는, 꼭 이루셔야 하는 일들을 그렇게 놓치신 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비록 실수가 많은 존재이지만, 나의 하나님은 그런 나의 실수마저 덮으시고 사용하실 만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이런 마음의 뿌리에는 내가 하나님과 비슷한 지혜로 정확한 때를 알고 있다는 교만이 한줄기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쯤 하나님이 싸인해 주실 것 같은데 아무런 싸인이 주어지지 않는 것을 내가 그것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때쯤 하나님의 일들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것을 내가 혹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일 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매여서 살아가는 내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수준을 이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내가 영원하신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가늠하는 것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어떤 패턴이나 공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 처음 이적을 행하신 것은 가나의 혼인자치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마리아의 요청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지시를 받은 하인들이 예수님께 나왔을 때,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바로의 관원들의 꿈을 해석하여 주었습니다. 요셉의 해석처럼 술맡은 관원은 감옥에서 풀려나 복직되었습니다. 요셉은 이 일이 자신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무엇인가 하나님의 회복이 진행될 것을 바라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2년이 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요셉은 모든 기대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실수 없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정도를 지낸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모세는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실 것이라고 기대하며, 자기 열심으로 동족들을 지키고자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렇게 미디안 광야에서 나그네 같은 처지로 40년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세는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 모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뿐만이니라 떨기나무에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모세를 불러내셨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40년을 지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때가 임하고 하나님의 싸인이 주어졌을 때, 모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모세가 그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가 그것을 결코 놓칠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싸인을 분별하기 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하나님이 가장 좋은 때에 행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때를 놓칠까 봐 하나님의 싸인을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내 안에 분명하게 자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 평강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는 은혜 누리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