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너희가 내게 돌아오면 이런 말을 해주리라 생각했었다.
‘좋다! 너희를 다시 가족으로 받아 주겠다.
너희에게 최고로 좋은 땅,
뭇 민족들이 부러워 죽을 땅을 주겠다.’
나는 너희가 ‘사랑하는 아버지!’ 하며 내게 와서,
다시는 나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그렸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남편을 배신하고 떠난 여인처럼
너희, 이스라엘 가문 전체가 나를 배신했다.”
하나님의 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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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후회도 없으시고 실수도 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 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고백했습니다. 실제로 우주의 역사에서 무엇하나 하나님의 예측에 어긋나게 진행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지혜와 예측을 벗어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이런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돌아오면 이런 말을 해주리라 생각했었다. 좋다! 너희를 다시 가족으로 받아 주겠다. 너희에게 최고로 좋은 땅, 뭇 민족들이 부러워 죽을 땅을 주겠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사랑하는 아버지! 하며 내게 와서, 다시는 나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그렸었다. 하나님이 지금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대하셨고,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꿈꾸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하나님이 꿈꾸신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없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일들이 실행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모세는 민수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라고 하나님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남편을 배신하고 떠난 여인처럼 너희, 이스라엘 가문 전체가 나를 배신했다.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게, 기대와 전혀 다르게 현실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대와 바람과 다르게 이스라엘이 행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 유다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전지 하심이 틀리더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도무지 그러실 수 없는 하나님이 그럴 것이라 가정하시며 생각하시고, 이렇게 되면 하는 기대를 품고 꿈을 꾸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마음을 표현하셨던 적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북 이스라엘을 향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징계의 손을 드셨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남에게 넘겨 주겠느냐?... 너 때문에 내 가슴이 뛰고, 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불붙는 듯하구나.
그 녹아내리는 심정은, 불붙는 긍휼은 단지 북 이스라엘 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유다를 향해서도 그런 마음으로 유다를 다시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시자, 하나님은 세상으로 사람들 사이로 뛰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말로 전해서 알아듣지 못하자, 직접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저 애달픈 마음은 단지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마음만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고, 내 주변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슬픈 눈빛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너무 다릅니다. 괜한 일로 불편을 만들까봐 섣불리 복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관계를 만들어 가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수년이 지나도록, 그보다 더 오래되었어도 아직 복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이렇게 복음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복음을 전할 의도조차 품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저런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있다면, 나는 과연 지금까지 침묵할 수 있었을까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저런 절실하고 애달픈 마음을 계속해서 모른척 살 수 있었을까요? 아직도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부족한 마음이 한없이 크게 느껴지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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