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er than Honey | 말씀곱씹기 단맛이 날 때까지/사무엘상 [새 시대를 여는 사람]

사무엘상 7장 7-14절 (2)

Apis 2022. 12. 31. 05:00

7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이 블레셋 사람에게 전해지자, 블레셋 지도자들이 그들을 치려고 나왔다. 이스라엘은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다. 블레셋 사람이 다시 행동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8 그들은 사무엘에게 간청했다. “온 힘을 다해 기도해 주십시오!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우리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의 압제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9 사무엘은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어린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물로 바치고,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10-12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고 있을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다가왔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천둥을 내리치시니, 블레셋 머리 위로 천둥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들이 겁에 질려 허둥지둥 도망쳤다. 대혼란이었다! 이스라엘은 미스바에서 쏟아져 나와 블레셋 사람을 추격하여, 벳갈 너머에 있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그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사무엘은 돌 하나를 가져다가 미스바와 센 사이에 곧게 세웠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표시다”라고 하면서,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라고 했다.
13-14 호되게 당한 블레셋 사람이 다시는 경계를 넘어오지 않았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엄히 다루셨다. 이스라엘은 전에 블레셋 사람이 빼앗아 간 성읍, 곧 에그론에서 가드까지의 모든 성읍을 되찾았다. 그 주변 지역들도 블레셋의 지배에서 해방시켰다.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도 평화가 임했다.
15-17 사무엘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에 든든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는 해마다 베델에서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항상 자기 거처인 라마로 돌아와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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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기회인가, 힘에 겨운 문제인가?

미스바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던 이스라엘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던 블레셋이 전쟁을 위해 미스바로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껏 한번도한 번도 블레셋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사사 삼갈이 블레셋 600명을 죽인 일과 삼손이 탁월한 능력으로 블레셋과 싸운 것 외에는 지금껏 블레셋과의 전쟁은 일방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앞선 금속 문명을 가지고 있던 블레셋을 아직 금속제 무기가 없는 이스라엘이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블레셋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벽처럼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블레셋이 싸우러 오고 있다는 소식은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시련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론을 알고 보는 우리에게 이 상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기회입니다. 그 시절 이스라엘의 눈으로 보기에도 은혜의 기회로 보이면 참 좋았을텐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믿음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분명 은혜를 구했는데 시련이 닥쳐오면 당황하고, 정도에 따라서는 지금 이스라엘처럼 공황에 빠질 수 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스라엘이 믿음의 동역자인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믿음 안에서 버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나의 삶에 찾아오는 문제가 은혜의 기회인지, 단지 힘겨운 문제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성도의 삶에는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손 아래서 진행되는 은혜의 기회가 됩니다. 하지만 더 분명하게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문제를 풀어낼 능력이 내게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지금 이스라엘은 기도하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이곳 미스바에 모여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하러 올라오는 블레셋이라는 문제가 닥쳐온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전쟁을 치를 무기도 없지만, 먹고 싸울 양식조차 갖추지 않고 나온 상태입니다. 즉 이들에게는 전쟁을 풀어낼 능력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이 풀어낼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한 은혜의 기회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게 닥친 문제가 전혀 준비되지 못한 나에게 재앙처럼 다가오고 있다면, 그것은 내 노력과 열심을 보일 기회가 결코 아닙니다. 믿음으로 맞이해야 하는 은혜의 기회이며,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확인하시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숨 막힐 것 같은 순간에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저 말씀을 따라 힘든 걸음을 걸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입니다. 

이삭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묵묵히 3일 길을 걸어 모리아 산으로 걸었습니다. 홍해에 앞이 막히고 뒤로는 바짝 쫓는 애굽의 마병들이 보였을 때, 이스라엘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렸습니다. 물이 넘치는 요단강을 건너라는 말씀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매고 일단 요단강에 발을 디뎠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들이 풀지 못할 문제를 만났을 때, 그냥 버텼습니다. 오늘 이스라엘도 두려웠지만, 미스바를 벗어나 도망치거나 무기를 챙기러 움직이지 않고 기도하는 사무엘 옆에서 버텼습니다. 블레셋이 그들 까까이 다가왔지만 그냥 버티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이스라엘이 할 일은 오직 도망치는 블레셋을 쫓아가서 죽이는 것 뿐이었습니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블레셋을 이스라엘이 아무 준비 없이 (이렇게 쉽게) 이길 것이라는 기대조차 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일도 없이 - 작전도, 매복도, 어떤 계획도 없이 그저 도망치는 블레셋 사람을 추격하여 닥치는 대로 죽인 것이 그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블레셋을 쫓아낸 그곳에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 돌을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마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며 감사할 일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문제들을 뒤섞어 놓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오는 문제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기회입니다. 특별히 내가 반복해서 넘어지는 그 문제를 만나게 되면, 내 힘으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되면 그것은 분명한 은혜의 기회입니다.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면서라도 견뎌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피해 도망치거나 섣부르게 반응하지 마시고 버티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심을 믿고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그 뒤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온전히 믿음으로 살지 못한 나의 삶에 대한 통회만 하나님께 내보이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말씀대로 살아보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찢겨지고 넘어진 상처 가득한 마음으로 그저 은혜를 그하며 엎드릴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엎드린 곳이 하나님 앞이라면, 재를 뒤집어쓴 통회로 시작하고, 상처받은 아픔으로 인한 눈물로 시작했더라도 나를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비록 나는 아직 온전히 살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그런 내 모습을 숨김없이 꺼내어 놓고, 내게 닥친 문제를 풀어갈 능력 없음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재 대신 화관을, 슬픔대신 기쁨의 기름을,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혀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