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장 (2) 47~57절
앞부분 묵상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먼저 일하시고, 더 넓게 보시고,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일하심을 나누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매일 다시 확인하고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을 끌어올려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는데, 이에 반해서 우리는 자꾸 하나님을 우리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이런 우리의 경향은 또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개인적인 일들, 감정의 쓸린 부분까지 마음쓰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하나님을 우리의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큰 일을 한다고 마음쏟느라 주변의 작은 일을 놓치는 것은 유한한 존재인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실수가 없으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내 주변의 누구처럼 일을 잘처리하시는 수준이 아닙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별들이 운행하며 자연 만물이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그렇게 이끌어가신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게 행할지라도 내 주변의 여러가지 사건이 내 삶을 뒤흔들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사건의 교차점들을 통해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로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실제로 깨닫고 믿으며, 그 믿음대로 사는 일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그것들을 깨닫고 누려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말씀 속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더 크게 보시며 인도하셨고, 자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죄수에서 애굽의 2인자인 총리의 자리에 서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수준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심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이 자신의 작고 개인적인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그 크고 높으신 하나님이 그것까지 신경쓰실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집의 모든 일을 잊게 해주셨다] 고 고백하며 그 이름을 [므낫세=잊다]라고 지어줍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과 상처를 이제와서 들먹이기 보다는 그냥 잊고 묻어두겠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해주셨는데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문제까지 어찌 해볼 생각은 하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뒤이어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 내 슬픔의 땅에서 나를 번성하게 해주셨다 고 고백하며, 그 이름을 [에브라임=갑절의 번성]이라고 합니다. 이제 정말 잊고 누리게 해주신 은혜에 만족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고백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총리의 일(=풍년에 곡식을 사들여 저장하는 일과 흉년이 시작되자 그 곡식을 파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요셉의 생각과 다르게, 하나님은 이미 요셉의 개인적인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시고 싸매주시기 위한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41장은 기근이 온 세상을 덮쳤다 로 마무리 되는데, 그 다음 42장은 야곱이 애굽에 식량이 있다는 소문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일들이, 그리고 요셉의 개인의 상처와 감정에 대한 하나님의 회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언서 중에서는 예레미야서를 좋아합니다. 다른 예언서와는 다르게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형식이라 읽기 편해서이기도 하고, 또 하나님이 선지자 한사람의 삶을 만져가시는 내용이 좋아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중 예레미야서 45장은 매우 특별한 장입니다. 예레미야서의 스토리는 44장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46장 이후에는 부록처럼 열방을 향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45장은 5절로 이루어진 짦은 장입니다. 그 내용은 예레미야를 곁에서 돕던 바룩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열방을 향한 메세지를 주시면서, 그것을 기록하기 전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바룩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감동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룩에게 그 말씀을 주시는 이유가 얼마 전에 바룩이 탄식하였던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탄식하며 염려하던 바룩을 안심시키시기 위해, 열방을 향한 말씀을 선포하시기 전에 바룩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룩!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하시는 말씀이오. 그대는 ‘이 무슨 고생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첩첩산중으로 가게 하시는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 이제 지쳤다’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오. "주위를 둘러보아라. 내가 지었던 것을 내가 허물고, 내가 심었던 것을 내가 뽑아 버릴 것이다. 어디에서든─세상 전역에서!─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거창한 계획을 세울 생각은 마라. 상황이 호전되기 전에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이 모든 일 가운데 내가 너를 끝까지 지켜 살아남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니 온 우주를 경영하시는 분이십니다. 너무 큰 일을 하시기에 내가 여기있는 것조차 모르시지 않을까 우리는 염려합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하신 우리의 아버지는 나의 작은 신음에도 반응하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 사실을 분명하게 경험하였던 다윗은 시편 40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하나님은 오늘도 온 우주를, 천지 만물을 운행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큰 일들에 앞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돌보시는 일에 마음을 쏟으십니다. 그 하나님은 어쩌면 요셉처럼, 내가 ‘그냥 잊자’ 라고 생각한 그 일까지도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그 일을 풀어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내 마음의 여린 부분에 맺힌 작은 상처까지도 기억하시며 하나님의 때에 그 상처들을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에 관심가지고 계심을 믿고 그 분앞에 내 마음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만 내 마음을 쏟아낼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마음을 졸이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 대신 기도하십시오. 간구와 찬양으로 여러분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하나님께 여러분의 필요를 알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대한 감각, 곧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믿음이 생겨나서 여러분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삶의 중심에서 염려를 쫓아내실 때 일어나는 일은 실로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기쁨으로 채움받는 놀라운 은혜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