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s 2022. 11. 21. 10:58

요셉은 노예로 팔렸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을 누렸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보디발의 집에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은 [형통]을 누렸습니다. …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요셉도 그것이 [형통]이라는 것을 깨달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과연 요셉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요셉에게 무엇을 바라셨던 것일까요? 더 나아가서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다양한 고통과 억울함, 아픔을 겪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무엇을 바라시는지 만 알아도 좀더 이 시간들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데 …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린 배신감에 몸서리치다가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나름  열심히 살며 인정받는 자리에 올라선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랬는데 주인집 여자가 유혹하기에, 그래도 하나님을 떠올리며 유혹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상을 주셔야 할 것 같은데, 상이 아니라 모함에 의해 감옥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성실하게 충성되게 섬긴 결과가, 그 보상이 이렇게 어처구니 없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전에 당했던 배신과 함께 요셉의 마음과 인생에 큰 자국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감옥생활이지만 다행히 간수장이 요셉을 좋게 보아서 요셉이 할 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의 여러가지 일들을 관리하며 그 안(왕의 죄수들-고위직 관리들을 가두는 감옥)에 있는 죄수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왕의 술맡은 관원에게는 그의 복직과 연결된 꿈을 해석해 주고 자신의 억울함을 탄원하면서 그가 복직하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해석대로 3일 후 술맡은 관원은 복직되어 돌아갔습니다. 말씀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고맙다며 떠나는 그에게 요셉은 몇번이라도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술잔을 맡은 관리는 요셉에게 신경 쓰지 않았고, 요셉의 처지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요셉은 하루, 이틀 … 하염없이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이 부분은 애니메이션 - 이집트 왕자2에서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의 연락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되었을 때, 어쩌면 요셉의 내면에는 다시 배신에 대한 상처자국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기대하셨을까요? 배신감에 사로잡혀 복수심에 불타는 요셉을 만드시려는 것 일까요?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듯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난 요셉은 배신감도 복수심도 남아있지 않은 지혜롭고 너그러운 요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배신의 상처들을 가지고 그런 요셉을 만들어 내실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요셉사이의 비밀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시편 105편에는 아브라함의 언약과 요셉의 이야기, 출애굽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 중 17-19절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이 부분을 영어 NLT로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Until the time came to fulfill his dreams, the Lord tested Joseph’s character. … 그리고 각주에 his dreams를 his word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 순간 자신을 시험하고 확인하시는 것을 요셉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요셉은 한순간 한순간을 버텨냈고, 하루 또 하루를  견뎌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지나던 중 어느날 보니 그의 성품이 달라졌고, 요셉은 결국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으로 믿고 사용하실 만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도 그랬습니다. 하루 아침에 골리앗을 이겨 나라를 구한 영웅에서 왕에게 쫓기는 도망자가 되었을 때, 다윗은 왜 일이 이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고 버텨냈을 뿐입니다. 어떤 날은 그저 살기 위해서 버텼고, 또 어떤 날은 그래도 말씀을 놓지 않으려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버티고 견뎌내다 보니, 어느 순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만한 수준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해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동일하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도 지금 내 삶에 일어나는 사건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어렵고, 서럽고, 몸서리칠 만큼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변함없이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버티고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드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믿음 안에 살면서 성공을 누리는 이들을 보면 왜 저들은 저런 성공을 누리는데…  하는 생각에 부럽고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형통]을 다루면서 우리들 눈에 보이는 [형통]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누린 [형통]의 열매라고 말씀드렸는데 … 이 원리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눈에 보이는 [믿음 안에서의 성공]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보인 [믿음 안에서의 순종]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믿음 안에서의 순종은그 의미를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고 견디며 하나님을 구하다가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미를 알기만 해도 훨씬 잘 이겨낼 것 같은데 왜 말씀해 주시지 않는가? 의미를 모르더라도 하나님을 보며 이겨내는 것을 [믿음]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으로 불리는 11장 바로 뒤에 이런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은, 언제나 달라지지 않고 우리를 의미를 알지 못하는 어렵고 짜증나고 슬프고 서운하고 힘겨운 일들과 만나게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것들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들을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며 버텨내는 것입니다. 버티기 어려울 때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보며 좀 더 견뎌내는 것입니다. 이것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버텨냄 뒤에 예비해 놓으신 은혜를 누리는 순간까지(Until the time came to fulfill his dreams)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