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장 1절 - 15절(2)
자신의 계산으로 인생을 살아오던 야곱이 계산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야곱이 자기의 계산으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은 야곱을 묵묵히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야곱을 위기에 몰아넣으실 수도 있으시고, 또 억지로 야곱을 떠밀어 무엇이든 시키실 수 있으셨지만 하나님의 그저 한량없는 인내로 야곱을 기다려 주셨습니다.
더러는 야곱의 딸 디나의 사건을 하나님이 야곱에게 무엇인가를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는 세겜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인생가운데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이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것들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사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서 진행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가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인생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과 사건과 사고의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남동생과 신이나서 까불어대기 시작하면, 그것을 보시던 할머니께서 저희 형제에게 그러다가 다치고 울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방방 뜨던 행동은 항상 할머니의 예언(?)처럼 폭풍 같은 사고 뒤에 누군가의 눈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사고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 형제의 까불어대던 본능이 당연히 (운명처럼^^) 사고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한 번도 그 사고들의 책임이 할머니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은혜 아래 살기를 거절하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사고를 만드시지 않아도 우리의 욕심이 우리를 사건과 사고 속으로 몰아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할 때는 나의 어린시절과 다르게, 하나님의 책임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억지를 써서 우겨대며 나를 사건과 사고 속으로 몰아넣으셨다고 말해 보기도 했지만, 성경은 이런 것을 정확하게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가만히 계셨으니 이것도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우기기도 했지만,결국 은혜를 누리고 나니 은혜 없이 살려했던 삶의 결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누리고서 다시금 은혜의 삶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해서 드리는 고백이 [내 인생이 온전히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입니다. 즉 내 인생이 하나님의 손아래 있습니다는 하나님께 대한 책임 전가가 아니라 감사와 은혜의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시 불러주시는 사랑을 받은 야곱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이제야 자기의 인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자기의 인생이 어려울 때마다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혹시 하는 마음으로 지녔던 이방 신상들과 세상의 문화를 흉내 내며 가지고 있던 귀고리들을 버리고 벧엘로 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았을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의 이름을 이제는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흐르는 언약이 야곱에게 계승되었음을 확인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야곱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시는 내용의 시작 부분에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 있습니다. 9절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서 하나님이 야곱과 언약을 새롭게 하셨다고 보이는데,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났습니다. 밧단아람에서 돌아와서 에서를 만나 관계를 회복하고 세겜에서 살다가 사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에서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잔머리를 굴려 가나안 땅에 왔지만 벧엘까지 오지 않고 세겜에 머물렀는데, 하나님은 그때의 야곱은 마치 라반에게 있던 야곱과 다르지 않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신앙으로 결단하고 벧엘에 도착했을 때에 비로소 ‘돌아왔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 우리의 믿음은 시험(Testing)이 아니라 훈련(Training)입니다. 시험과 훈련은 비슷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시험과 훈련은 힘들게 준비된다는 것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시험은 한번 치르면 끝이 납니다. 합격과 불합격으로 또는 점수가 나와서 끝이 나는 것이 시험입니다. 하지만 훈련은 한 번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수준이 될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 훈련입니다.
** 믿음은 훈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될 때까지 같은 과정의 훈련을 반복하십니다. 대인관계의 훈련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꾸 어려운 사람들을 겪게 하십니다. 삶의 우선순위의 훈련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바쁘고 분주한 시간들을 지나게 하십니다. 금전적인 훈련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훈련이 필요한 사람에게…, 믿음 안에서 담대하게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 … 하나님의 훈련과정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지금 딱 이것이 필요하다 여겨지시면 바로 그 과정의 훈련소에 우리를 입소시키십니다.
*** 그 믿음의 훈련소는 어떤 경우는 광야였고, 어떤 경우는 왕궁이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노예와 같은 삶이었고, 필요한 경우에는 감옥까지도 사용하셨습니다. 보이는 모양은 각기 달랐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판단하셔서 꼭 맞는 곳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남께서 원하시는 수준이 될 때까지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수준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야곱도 그렇습니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는 수준이 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연단하셨습니다.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 움켜쥐려는 야곱을, 자기 손에 쥐기 위해서 형도 아버지도 속이던 야곱을,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 야곱으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은 연단하시고 연단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야곱이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쥘 수 없음을 인정하며 벧엘로 하나님께로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야곱이 돌아왔다고 인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의 수준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 야곱의 품 안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준비시키고 길러내십니다. 다음 단계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하십니다.
*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연단하고 계십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이들은 시장바닥 같은 혼란과 분주함으로, 어떤 이들은 인생의 광야에서, 또 어떤 이들에게는 과한 칭찬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억울한 비난으로 … 하나님의 훈련 과정은 다양하지만 목표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준으로 우리를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수준에 도달하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다음 단계의 일들을 진행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수준, 어떤 단계에 서있든지 나를 위하여 이 일을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목표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당하는 이 연단의 시간들이 힘겹기만 한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꾸는 시간이되며 마음에 더 큰 소망을 품게 되는 시간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