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장 12-16절
[메시지 성경 | 갈라디아서 4장 12-16절]
12-13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여러분의 입장에 서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나의 입장에 서려고 노력해 주십시오. 그때 여러분은 참으로 다감하고 친절했습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내가 여러분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체가 병들어 여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나는 여행을 멈추고 여러분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14-16 아픈 손님을 맞이하는 것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천사를 대하듯 나를 대했습니다. 여러분은 마치 예수께서 친히 여러분을 방문하시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대하면서 예수를 대하듯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습니까? 그 당시 여러분이 느꼈던 그 만족은 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때 여러분 가운데는 할 수만 있다면 내게 자기 눈을 빼 주려고 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나를 생각한 여러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했다고 해서 갑자기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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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교회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운 교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수리아의 안디옥교회를 출발해서 구브로섬(키프로스)을 거쳐서 터키 남부의 항구인 앗달리아로 그리고 다시 조금 북 서쪽에 위치한 항구 버가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180km를 달려 해발 1180m에 위치한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은 눈이 쌓이는 추운 겨울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런 추위를 무릅쓰고 그곳에서 다시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를 거쳐 더베까지 이르는 길을 행하며 전도하였습니다.
앗달리아와 버가는 밤빌리아에 위치한 항구도시있고, 다른 도시들은 갈라디아에 속한 도시들입니다. 바울의 기록한 갈라디아서는 바로 이 1차 전도여행으로 이 도시에 세워진 교회들이 돌려보도록 보내진 편지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 드러나듯이 1차 전도여행의 고된 일정으로 인해 중간에 바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악화된 건강으로 바울은 휴식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휴식으로 인해 갈라디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라고 말합니다. 바울 자신이 복음을 위해서, 너희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방인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 그런데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 것처럼 복음을 벗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벗어나 바울 자신이 보였던 모습처럼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만 붙들기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그 일을 언급하며, 갈라디아 교인들과 자신 사이에 맺어졌던 끈끈함을 떠올리게 합나다. 내가 약한 시절에도 당신들이 내게 이런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이 시절에 당신들은 복음을 전하는 나를, 내가 전하는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처럼, 마치 예수님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지 않았습니까? 그 복음에 감격해, 복음을 전하는 나를 돕겠다고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줄것 처럼* 나를 대했는데 … 왜 지금 나를 적대시 합니까? 묻는 것입니다. (*이 부분때문에 많은 성격학자들이 바울이 눈과 관계된 질환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 사도가 처음 전도여행을 통해 세운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문제를 보며, 바울 사도의 아픔과 안타까움은 크지만, 제시하는 해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바울 사도가 완전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에 미친 것처럼, 내가 복음에 목숨을 건 것 처럼, 나는 죽고 예수만 산 것처럼 사는 것처럼 …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복음은 삶입니다. 복음은 말과 이론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처럼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모범으로 보여지는 것 입니다. 오늘 내 삶의 한자락이 이런 모범을 만들어 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그 누군가의 마음에 [나와 같이 되기를] 기대하고 복음 앞에 나오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