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s 2022. 8. 28. 23:28

[메시지 성경 | 갈라디아서 4장 8-11절]
8-11 전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던 때에는 신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신들에게 종노릇했지만, 이제는 진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다시 종이호랑이들에게 굽실거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여러분은 특정한 날과 절기와 해와 관련된, 모든 전통과 금기와 미신을 두려워하며 꼼꼼히 지키더군요.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기울인 나의 모든 수고가 연기처럼 사라질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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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 교인들의 달라진 신분과 누려야 할 특권-자유를 말한 바울 사도는, 그런 변화된 신분을 얻고도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율법에 묶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의 모습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던 때에는 신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신들에게 종노릇했지만] 갈라디아 교인들의 이전 상태입니다. 신성과는 아무 상관없는 신들은 하나님이 아니 것들이며,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들 혹은 귀신을 의미합니다. 즉 이 모습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 우상과 귀신같은 것들에 매여 살았던 이교도 시절의 상태입니다..

[이제는 진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런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적 은혜로 그들을 찾아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믿음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참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떨쳐버린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으로 스스로를 묶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능력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헛된 매임에서 자유를 찾아 주셨는데, 그렇게 얻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스스로 묶어 버리고 율법에 매여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이것은 율법이 말하는 날(안식일/금식일)과 달(월삭과 유대력에 따르는 것)과 절기(율법의 7 절기와 부림절 수전절)와 해(안식년 등)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단지 지키는 것 만이 아니라 [모든 전통과 금기와 미신을 두려워하며 꼼꼼히 지키더군요]라는 표현처럼 그것을 어기면 구원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바울도 율법의 규례를 따라 행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의 의미를 모르며 묶이는 것은 문제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왜곡된 믿음으로 율법에 매여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갈라디아 교인들의 모습을 보며, 바울 사도는 그동안 자신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친 수고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바울의 수고가 헛된 일이 되는 것을 염려하는 말이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염려입니다.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은 복음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서 이들의 율법에 대한 관심은 크게 높아져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알게 된 율법에 이들은 깊이 매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율법을 따라 행동하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지금 갈라디아 교회에 새로운 유행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지금 이것을 끊어주지 못하면, 이들이 율법에 매이게 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들을 막아 세우려고 다양한 방식으로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을 누리는 방법입니다. 나의 죄 된 본성은 누군가가 부추기거나 무엇인가에 의해 스위치가 켜지면,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내달리려고 합니다. 이런 죄의 능력을 막아 세울 수 있는 것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한번 듣고 죄와 욕심에서 돌이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순간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고개를 치켜세우고 틈을 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명 그 순간은 넘어갔는데 잠깐 지나고 보면, 그것에 걸려 넘어져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매번 죄에 걸리고 욕심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의 충동질을 이길 방법은 없습니까? 아니요 분명히 있습니다. 말씀이 죄를 이기게 합니다. 그런데 죄를 이기기 위해서, 욕심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말씀을 한 번이 아닌, 잠깐이 아닌 거듭해서 계속 들어야 합니다. 가능한 한 항상 말씀과 동행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주일 예배는 죄와 욕심을 끊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1시간가량 드리는 예배로 한 주간의 삶-168시간의 삶이 온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기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매일 삶의 자리에서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이 보이는 은혜를 누려야, 우리는 온전한 삶을 살아내게 하는 말씀의 능력을 그나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