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다. 그는 한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16-17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다. 그 딸들이 우물가로 와서 물을 길어 여물통에 채우고 아버지의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그때 어떤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아내자, 모세가 그 딸들을 구해 주고 그들이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것을 도와주었다.
18 딸들이 집으로 돌아가 자기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르니, 아버지가 말했다. “일찍 끝났구나.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
19 그들이 말했다. “어떤 이집트 사람이 목자들한테서 우리를 구해 주고, 우리를 위해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여 주기까지 했습니다.”
20 아버지가 말했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어째서 그 사람을 남겨 두고 왔느냐? 그를 불러다가 함께 식사하도록 하자.”
21-22 모세가 그의 제안에 따라 그곳에 정착하기로 하자, 르우엘이 자기 딸 십보라(새)를 모세에게 아내로 주었다. 십보라가 아들을 낳자, 모세는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게르솜(나그네)이라고 했다.
*****
나그네처럼
모세는 자신이 저지른 성급한 행동의 결과,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이렇게 떠난 모세의 마음은 훗날 지은 아들의 이름처럼, 모든 것을 잃은 나그네처럼, 그 어느 곳도 하나 갈 곳 없는 떠돌이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도망친 모세는 지금 한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갈증 나고 지친 몸으로 우물가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제부터 아무것도 없고 관련 지식도 없이 이 광야에서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으로, 맥이 풀린 체 앉아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깨닫지 못했지만 모세가 앞 날에 대해 알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지금, 하나님은 모세를 위한 내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막막함으로 힘이 빠져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모세는 하나님이 만지시기 딱 좋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들
이제 그 모세 곁으로하나님이 준비하신,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이 양 떼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그녀들이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그 순간에, 이번에는 그녀들을 방해하는 다른 목자들이 등장합니다. 목자들은 그녀들을 위협하며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때, 앉아있던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목자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일어나 그녀들을 구해주고 양 떼에게 물 먹이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이 작은 선행이 기회가 되어 모세는 자신이 도왔던, 미디안 제사장인 르우엘의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습니다. 모세의 장인이 될 르우엘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는 이드로(풍부함)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만 르우엘(하나님의 친구)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지쳐있고 막막한 모세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지금 그의 모습은 이드로보다 르우엘이 어울립니다. 어쩌면 훗날 모세가 이 일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친구같은 역할을 한 것을 기억하며 이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정을 이룬 모세
그리고 대화를 나누던 중 르우엘은 모세에게 그곳에서 자신들과 같이 지내자고 제안합니다. 오갈데 없는 모세에게 머무를 곳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같이 지내게 된 모세에게 자신의 큰 딸을 주어 아내를 삼게 합니다. 이제 모세는 가정을 이루고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아직도 자신을 나그네처럼 여기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배워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모세가 그것들을 깨닫지 못하지만, 훗날 모세는 이드로가 르우엘이 되었다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이끌고 광야 길을 지나면서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모세는 미디안에서 자기 아들(게르솜)에게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세 스스로도 지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 밖에 있는 것처럼 생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세는 아들에게 믿음에 관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인 할례조차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배우지 못한 게르솜은, 훗날에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한 요나단은 사사기 뒷부분 - 미가의 산당과 단지파 에피소드에서 믿음이 없는 레위 청년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분명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시키십니다. 모세의 실수를 통해 모세에게 또 다른 과정을 준비시킵니다. 하지만 이 순간 자신의 가족과 자녀들에 대해 하나님을 전하고 가르쳐야 할 책임은 오롯이 모세의 몫입니다. 하나님이 방치하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책임을 모세가 감당할 때,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세의 가정이 깨닫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끔찍한 상황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로 만든 갈대상자를 통해 그 가정과 모세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누렸듯이, 모세에게도 자녀를 위한 기도와 눈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지만
이 시간을 놓친 모세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때는 모세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회복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 나은 아들의 이름을 엘리에셀(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붙였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다시 믿음을 회복하고,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해 전하고 믿음을 가르치기에 모세는 너무 바빴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나면서부터 배운 엘리에셀은 모르지만, 이미 성장한 게르솜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훗날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의 비극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믿음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물론 내가 오늘 실수하더라도 하나님은 넘어진 나를 세우시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시간들을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오늘의 기회를 놓치면 나에게는 그만큼 아파해야 하는 것들이 남게 됩니다. 물론 그것까지 회복하고 돌이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시간과 마음의 크기는 오늘 내 마음을 다잡는 것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기를 기대합니다. 매순간 하나님을 생각하며 곁에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은혜 누리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