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s 2024. 10. 6. 22:40

13-14 여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있는 금제단의 뿔들로부터 울리는 한 음성이 여섯 번째 천사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 천사들, 큰 강 유프라테스에 감금되어 있는 그 천사들을 풀어 놓아주어라.”
15-19 그 네 천사가 풀려났습니다. 네 천사는 정해진 년, 월, 일, 그리고 시까지 맞춰 인류의 삼분의 일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던 이들입니다. 기마대의 수는 2억이었습니다. 나는 환상 중에 그 수를 들었고, 말들과 그 위에 탄 이들을 보았습니다. 말 탄 이들은 화염 같은 가슴막이를 했고, 말들은 머리가 사자 머리 같았으며,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 가지 무기, 곧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인류의 삼분의 일을 죽였습니다. 그 말들은 입과 꼬리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뱀 같은 그 꼬리에도 머리가 달렸는데, 그것으로도 큰 해를 끼쳤습니다.
20-21 이런 무기에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계속 전처럼 멋대로 살아갔습니다. 삶의 길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귀신들에게 예배하던 것을 멈추지 않았고, 보거나 듣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금, 은, 놋쇠 덩어리, 돌, 나무 조각들을 삶의 중심으로 삼던 것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어떤 기미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살인, 점치는 일, 음행, 도둑질에 빠져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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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섯째 나팔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울려 퍼지는 음성이 한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 그 명령을 따라 풀려난 이들은 때가 되면 인류의 삼분의 일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일을 위해 엄청난 수의 군대를 모았습니다. 군대가 모여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은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전쟁인가? 에 대해 참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입장에 대해 확인해보면, 전통적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데는 네 가지 입장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1세기 사도 요한 당시의 사건들로만 연결시키려는 과거론적 해석입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요한계시록은 이미 그때 일어났던 사건들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재림과 연결지어 미래에 일어날 일들로 보는 미래론적 해석입니다. 물론 이 입장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차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종종 마주치는 요한계시록을 비밀코드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됩니다. 
셋째는 요한계시록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연결지어서 해석하기보다는 하나님과 사단 / 교회와 불신 세상 / 선과 악 사이의 대결로 이해하는 이상주의적 해석입니다. 
넷째는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진행되는 일들로 보며, 예수님 때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역사적인 실제 사건들과 연결 지어 해석하는 역사적 해석입니다. 

이런 입장 차이에 따라 계시록을 보면 일곱교회를 향한 말씀 같은 경우는 별다른 논쟁이 없지만, 오늘 본문 같은 경우는 극명한 입장차이로 인해 해결되지 않는 논쟁이 존재합니다. 이런 입장들 중에서 어느 해석이 가장 좋다고 결론 내리기에는 저의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기도 하고, 또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는 영역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대신 요한계시록을 대하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 하면, 첫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요한계시록은 철저하게 예수님 중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하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일들을 진행하시는가? 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의 의도와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옵니다. 

인터넷 어느 목사님의 블로그에 올려있는 내용입니다.
유브라데 강 주위에서 일어날 전쟁은 하나님의 작정 속에 있다. 여섯째 나팔을 불 때에 그 전쟁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의 정확한 연도와 월일과 시각을 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만세 전에 다 아실뿐 아니라 또한 그의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뜻대로 작정하셨다. 전쟁은 하나님의 작정 속에 있다. 중동에서 일어날 거대한 세계대전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 전쟁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임을 당할 가장 참혹 한 전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제3차 세계대전을 암시한다. 본절에 예언된 이 전쟁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죽게 할 가장 참혹한 전쟁이다. 2017년 6월, 세계 인구가 약 75억이라고 하는데, 요한계시록 6장에 예언된 넷째 인으로 4분의 1이 죽으면 약 56억이 남고 그중에서 3분의 1이 죽으면 약 37억 즉 현재의 반만 남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볼때 동방이라면 해가 떠오르는 쪽이며, 2억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나 인도인데 2억의 군대를 동원해서 전쟁에 참전할만한 나라는 중국이라 생각이 됩니다. 또는 동방의 여러 나라의 군대를 합한 숫자 일 수 도 있을 겁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군대를 합친 숫자 일수 있고요.
... 최근 몇년동안 급속히 진행되는 중국의 군비확장을 주시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러시아도 점점 군비강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병대 즉 지금의 탱크를 동원해서 2억의 군대가 움직이려면 중국은 히말라야 산맥을 통과해서 파키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무난한 코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파키스탄 간의 고속도로가 필요합니다.... 자료를 보시면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맞추어 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당황스럽기는 한데 실은 요한계시록을 비밀풀이로 생각하고 그런 해석에 관심을 가지면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검증할 수 있는 실력은 제게 없습니다. 그런데 감히 말씀드리면 이런 내용들에는 무엇인가 빠져 있습니다.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친 해석입니다. 도대체 이것을 통해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중국과 러시아를 동원해서 파키스탕을 거쳐 이란으로 군대를 진격시시키시는지 아무 개연성이 없고 다만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냥 가져다 붙여서 숫자를 맞추고 미래의 비밀로만 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리와 방법들을 배워가기 위해 필요한 원칙중 한 가지는 객관성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에 말씀이 기록된 역사, 문화, 종교 등의 배경을 생각하며 말씀을 보아 가는 것이 객관성입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읽는 우리들에게도 은혜가 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말씀을 기록한 시대를 살아갔던 ‘원독자’ 들에게 먼저 주어졌던 말씀입니다. 즉, 그 원독자들이 읽고 느꼈을 바로 그 은혜, 그 감동이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전달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당시 핍박당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나라들을 통해 일어날 세계 3차대전이 과연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말씀이 될 수 있을까요?

 

또 전쟁을 묘사한 말씀 중에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 천이요, 다윗은 만 만이라 입니다.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풀면, 사울은 백만의 적군을 죽이고 다윗은 1억 명의 적군을 죽였다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모든 군인의 수는 7천만 명입니다. 그런데 다윗시대에 고대 근동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에서 1억을 죽였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분명한 과장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단 네 뿔은 권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합니다. 그 권능으로 말씀이 선포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브라데는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계의 끝입니다. 당시 교회는 로마제국이 통치하는 세상 속에 존재했습니다. 유프라테스강은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로마제국이 넘지 못했던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 유프라테스 강 너머에는 파르티아왕국이 존재했습니다. 이 파르티아 기병대는 이 시기에 로마가 이겨보지 못한 유일한 기병대입니다. 당시 로마의 불안 요소중 하나는 파르티아의 기병대가 유프라테스강을 넘어 침공해 오지 않을까였습니다. 그런데 이 환상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막강한 기병대가 로마를 침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으로, 당시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최대의 군대 수인 만 만의 군대 보다 두배로 큰 수입니다. 결국 이 환상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로마에 군사적 재앙이 찾아 온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런 재앙에도 변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전처럼 멋대로 살아가며, 삶의 길을 바꾸지 않는 악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에게 예배하던 것을 멈추지 않았고, 보거나 듣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금, 은, 놋쇠 덩어리, 돌, 나무 조각들을 삶의 중심으로 삼던 것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어떤 기미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살인, 점치는 일, 음행, 도둑질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다음 심판을 진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돌이키기를 바라시며 점진적으로 심판을 진행하시지만, 세상에는 돌이키지 않는 악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알곡이 상할까 봐 하나님은 심판의 범위를 제한하시며, 이제라도 돌이키는 한 영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을 통해 보여주시는 세상의 실체입니다. 심판의 도구가 자연의 재앙이든 직접적인 징계이든 하나님이 그 범위를 자한 하신 것이 은혜이고 긍휼입니다. 하지막 그 은혜와 긍휼로 이제 끝을 보일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진 것처럼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이들에게 그 끝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