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s 2024. 9. 8. 22:30

 1 그 후에 나는 천사 넷이 땅의 네 모퉁이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땅이나 바다에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나뭇가지를 살랑거리게 하는 바람조차 없도록, 사방의 바람들을 꼭 붙들고 서 있었습니다.
2-3 또한 나는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장을 들고서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땅과 바다를 해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네 천사에게 천둥소리처럼 외쳤습니다. “땅을 해하지 마라! 바다를 해하지 마라! 내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다 찍기 전까지는 나무 하나도 해하지 마라!”
4-8 나는 도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얼마인지를 들었습니다. 144,000명! 도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도장을 받은 이들은 유다 지파에서 12,000명, 르우벤 지파에서 12,000명, 갓 지파에서 12,000명, 아셀 지파에서 12,000명, 납달리 지파에서 12,000명, 므낫세 지파에서 12,000명, 시므온 지파에서 12,000명, 레위 지파에서 12,000명, 잇사갈 지파에서 12,000명, 스불론 지파에서 12,000명, 요셉 지파에서 12,000명, 베냐민 지파에서 12,000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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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는 여러 숫자들이 나옵니다. 많은 비유와 상징들이 나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종종 이런 비유와 상징을, 그리고 숫자를 무슨 비밀코드처럼 풀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고난과 박해가운데 있던 성도를 위로하고 소망을 주시려고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의 주장처럼 비밀코드로 쓰였다면, 급박한 상황에 놓인 성도들이 그것을 풀어 위로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계시록을 읽으며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책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보다 먼저 2,000년 전을 살았던 박해받던 성도들을 위해 기록되고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 시대의 문화와 개념 속에서 읽고 이해되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계시록을 읽어가면, 666이나 144,000같은 수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라 어렵지만, 당시 교회 성도들은 듣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개념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의 삶 속에서 쉽게 대할 수 있는 비유와 상징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주장처럼 666이 무슨 은행코드나 신용카드 또는 생체칩을 의미한다면, 이 계시록을 처음 받은 성도들은 이 말씀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위로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이런 특정코드처럼 접근하는 것보다는 흐름 속에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6장에서 여섯째 봉인까지를 떼시던 예수님의 거침없는 손길이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7장을 넘어) 8장에서 일곱 번째 봉인을 떼십니다. 봉인을 기준으로 보면, 오늘 본문인 7장을 빼고 읽어도 봉인을 떼시며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예수님의 통치는 끊김이 없이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 것일까요?  

거듭해서 요한 계시록은 두렵지 않은 책이라 말씀드리지만, 말씀을 읽어가며 접하는 내용들은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정복과 전쟁, 경제적인 문제와 사망이 등장했고 또 6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권세자들(예수님을 적대시한 사람들이라고 해석되는) 마저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이 다 두려워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나도 편안치 못하지 않을 것 같은 염려와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이 기록된 6장과 더 강한 심판이 예고되는 8장 사이에 오늘 말씀을 두셨습니다. 무섭게 여겨질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속의 사건은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라고 표현되는 경천동지 할 만한 수준으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과 과정들은 일곱째 인을 떼면 완성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사건의 대미를 앞두고 하나님은 7장을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아무리 긴박하고 엄청난 사건이 진행되더라도 내 백성은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들은 능력이 되지도 않고, 영혼들을 향한 사랑도 부족해서, 규모가  큰 일을 진행할 때는 주변 사람들을 세세하게 챙기지도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맡겨진 일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능력도 광대하시지만, 무궁하신 지혜와 한량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45장에 보면 이런 하나님의 성품이 잘 들어나는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사역을 정리하며 하나님이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예레미야 곁에 있는 바룩에게 기록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을 경영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바룩에게 먼저 말씀해 주십니다. 예전에 바룩이 …하나님께서 나를 첩첩산중으로 가게 하시는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 이제 지쳤다' 말했지만, 걱정하지 마라. 이 모든 일 가운데 내가 너를 끝까지 지킬 것이다 역속하십니다. 세상의 나라들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 열방을 통치하실 그 놀랍고 위대한 일들을 말씀하려는 순간인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지극히 작은 한 사람 바룩의 한숨과 탄식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과 위로를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으시기 전, 그 모든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한 템포 멈추시며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을 해하지 말라 하십니다. 6장의 마지막에 우리를 숨겨 다오! 저기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로부터, 그 어린 양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숨겨 다오! 그들이 진노하시는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버틸 수 있겠느냐?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그 두려움에 떠는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지키실 것인지 먼저 보여주시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이들이 두려워 떤다면 나라고 편할 수 있을까? 이런 염려가 분명 마음에 자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이런 상황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 밤은 죽음의 밤이었습니다.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울음이 도시를 채워가는 공포의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밤,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누구 하나 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분명 주변은 죽음과 공포에 눌려있던 밤이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밤이었고 해방의 밤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진 물들로 온 세상이 잠겼을 때, 모든 생명이 죽어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의 가족과 방주 속 생명들은 보호를 누렸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분명 두려움이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그것은 구원이었고, 은혜였고, 자유였고,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동일한 원칙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고 돌보십니다.

 

오늘 말씀도 세상이 두려워 떠는 시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과 보호를 위해 펼쳐진 하나님의 손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요한 앞에 있던 이십사 장로중 하나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곳에 그들을 위해 그분의 장막을 쳐 주실 것이다. 더 이상 굶주림이나, 목마름이나, 불볕이 없을 것이다. 그 보좌에 앉아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솟아나는 샘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이다

세상은 요동하고 있습니다. 처처에 기근과 전쟁의 소식이 있습니다. 갈수록 각박하고 흉흉한 뉴스들이 들려옵니다. 도대체 내 연약한 믿음으로 이런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나 있는 것인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럴 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으면 참된 실상과 눈을 가린 허상이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나를 둘러싼 그 무엇보다 크신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내 호흡과 눈빛을 조정하고 나면, 보이는 현실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을 누린 유진 피터슨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으며, 오늘 나의 현실을 새롭게 하는 능력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먼저 나의 호흡을 요한계시록의 호흡에 맞춰 보십시오. 그리고 시선을 번잡하고 분주해 보이는 사건들 너머로 옮겨서, 흔들리지 않고 놓여있는 보좌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또 그 옆의 어린양 - 죽임을 당하신 것 같은 모습으로 서 계신 어린양에게 고정하십시오. 그러면 엄청나고 놀라운 사건들 사이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말씀이 들릴 것입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나를 감싸게 됩니다. 이제 눈을 뜨고 다시 일상을 바라보면, 그렇게 커 보이던 현실의 문제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들인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