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s 2024. 7. 7. 22:30

 1 그 후에 보니, 아!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나팔소리 같은 음성, 앞선 환상에서 들었던 그 음성이 소리쳐 나를 불렀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너라. 들어오너라. 내가 네게 다음 일을 보여주겠다.”

2-6 곧 나는 깊은 예배 가운데 빠져들었고, 그러고 보니 아! 하늘에 보좌 하나가 놓인 것과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온통 호박(琥珀) 옥빛이 가득하고 에메랄드빛이 이글대고 있었습니다. 보좌 주위를 스물네 개의 보좌가 둘러싸고 있었는데,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면류관을 쓴 스물네 명의 장로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번쩍이는 섬광과 천둥소리가 보좌로부터 고동치듯 들려왔습니다. 보좌 앞에는 일곱 횃불이 타오르며 서 있었습니다(이들은 하나님의 일곱 겹의 영입니다). 그 보좌 앞은 수정처럼 맑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듯했습니다.

6-8 보좌 주위를 돌아다니는 네 동물이 있었는데, 온통 눈으로 가득했습니다. 앞을 보는 눈, 뒤를 보는 눈. 첫 번째 동물은 사자 같았고, 두 번째 동물은 황소 같았고, 세 번째 동물은 사람의 얼굴을 가졌으며, 네 번째 동물은 날고 있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네 동물 모두 날개를 가졌는데, 각각 여섯 날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 날개는 온통 눈으로 가득했고, 그 눈들은 주위와 안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우리 주님, 주권자이신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분.
9-11.
그 동물들이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스물네 장로는 얼굴을 바닥에 대고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께 예배했습니다. 그들은 보좌 앞에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놓고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오, 합당하신 주님!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 영광을! 존귀를! 권능을 받으소서!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셨기에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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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후에 … 
4장 말씀은 이 일 후에… 로 시작됩니다. 이 일이 무엇입니까?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입니다. 그렇다면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죠? 계시록 1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전에 1장에서 요한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평범한 주일,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역사 속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환상이 교회 가운데, 예배 가운데, 평범한 일상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중에 찾아오셨지만, 사도 요한이 이미 알고 있던 그 주님이셨지만, 그 주님은 요한이 죽은 자처럼 될 만큼 놀라운 영광과 위엄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 주님은 요한이 평소에 들었던 말씀처럼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시지만, 그 목소리에는 나팔 소리 같은 위엄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위엄과 영광으로 다가오신 주님은 제일 먼저 요한이 살던 현실 속의 교회들에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될 크고 비밀스러운 일들보다 먼저 현실 속의 교회들의 행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들의 잘잘못을 그들의 행위에 따라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잘한 것은 칭찬하시고, 잘못된 것들은 책망하신 후에 그것들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 후에 는  이 땅에서 마땅히 고쳐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순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들에 동참하기 원한다면, 먼저 나의 현실 속에서 잘못된 것들을 꺼내어 놓고 그것들에 대한 주님의 진단과 처방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비밀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스크루테이프를 보면, 성도를 넘어뜨리기 위한 방법으로 신앙이 추상적이 되게 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장차 어느 땐가 일어날 일에 대해, 가기에 어려울 정도로 멀고 알지 못할 어디선가에서 있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성도는 신앙을 잃고 무너진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앙은 철저하게 현실적일 때,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현실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 계시록은 이제 땅의 일곱 교회에서 하늘의 보좌로 우리의 시야를 옮겨갑니다. 말씀은 내가 보니 … 사도 요한이 보았더니 로 시작합니다. 1장에서는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처음엔 들었었는데, 이제는 보고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되자(성령 안에 있게 되자) 하늘의 소리가 들리고, 하늘의 것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할 때에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실은 하늘은 이미 열려 있었고, 하늘문도 이미 열려 있었습니다(4:1). 사람이 성령 안에 있어야 열린 하늘이 보이고, 열린 하늘 문이 보이는 것입니다. 요한이 하늘에서 보고 들은 것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입니다(4:1). 요한 계시록은 단순히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아니라, 이후에 마땅히 되어야만 하는 일들이 선포된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듣게 되면 변화가 시작됩니다. 말씀을 읽으면 내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요한은 밧모섬 교회의 작은 방에서 예배를 준비하다가(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계시록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탄압받고 있었으니, 요한의 예배는 가려진 곳에서 숨어 드리던 예배였을 것입니다. 그 요한이 성령에 이끌려 올라가서 제일 먼저 본 것은 하늘에 베풀어진 보좌였습니다(4:2). 드넓은 하늘에서 모든 세상을 향해 열려진 모습으로 드려지는 예배였습니다. 하늘의 보좌 위에 하나님이 앉아 계십니다. 성전 안이거나 다른 건물 안이 아니라 열린 하늘 위에 앉아계십니다. 하늘이 하늘인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요한의 예배가, 아니 당시 모든 성도들의 예배가 은밀한 곳에 숨어서 드리던 예배였을지라도,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 위에 앉아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그런데 어떤 형상으로 묘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 빛나는 영광을 다만 보석(대제사장이 가슴에 차는 흉패의 보석)으로 묘사합니다(4:3). 대제사장이 가슴에 차는 흉패에는 12개의 보석이 붙어 있는데, 그 첫 번째 것이 홍보석이고, 그 마지막 것이 벽옥입니다(출 28장). 흉배에 붙은 12 보석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징하는 보석들인 셈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엔 무지개가 둘려있습니다(4:3). 온 땅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인 무지개, 그것이 하나님 통치를 특징짓는 상징입니다.

유리 바다
말씀을 보면,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습니다. 유리처럼 맑고 빛나는 바다로 생각됩니다. 잔잔하고 투명한 바다처럼 읽힙니다. 성경은 제사장들이 성전의 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손과 발을 씻었던 '물두멍(Basin)’을 ‘바다(Sea)’라고 합니다. 그 물이 ‘놋(Bronze)’에 담겨있었기에 ‘놋 바다(The Brazen Sea)’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하늘에는 ‘유리바다(Sea of Glass)’가 있습니다. 

* 유대인들은 물이 담겨있으면 그것을 모두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갈릴리호수도 바다라고 부르, 사해 호수도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욥기(28:17)에 보면, 지혜와 명철은 황금이나 유리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유리는 황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유리바다'는 귀한 유리로 만든 물두멍인 것입니다. 하늘의 예배도 예배자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성결(Holiness)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이유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24개의 보좌들이 있습니다. 그 위에 24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앉아있습니다(4:4). 24 보좌와 24장으로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각 족속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백성들 12지파를 상징합니다. 그 24 장로들은 보좌 위에 앉아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습니다.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장로들은 모두들 자기들의 금관을 벗어 보좌 앞에 드리며 하나님께 경배합니다(4:10). 그 이유는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그의 뜻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존재’하는 것은 '그저 그러한 것'이 아니라, '뜻대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있음’도 '마땅히 그렇게 있음’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존재도,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의 있음의 이유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예배의 이유입니다.  

오늘도 나의 믿음이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현실 속에서 말씀을 붙들며 살아가는 은혜, 장차 일어날 일들 보다는 오늘을 살며 붙들어야 하는 은혜를 구하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 삶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되고, 그 예배를 위해 성결을 살아내는 현장이 있고, 그 예배가 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선 순환이 내 삶을 채우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