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s 2024. 4. 28. 22:30

4-7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적어 보냅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하나님께서, 또 그분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 또 충성스런 증인이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 살아나신 장자이자 지상의 모든 왕을 다스리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삶에서 우리 죄를 피로 씻으시고
우리를 한 나라로, 그분의 아버지를 위한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이 영원하기를!
아멘. 그분이 지금 오고 계신다!
구름 타고 오시는 분, 모든 눈이 보게 되리라.
그분을 조롱하고 죽인 자들도 보게 되리라.
모든 나라,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보고
비통해 하며 자기 옷을 찢으리라.
오, 그렇게 되기를!
 
8 주님께서 밝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는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하나님이다. 나는 주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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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
어느 분야에서든지 나름 성공한 사람들에게 성공의 원동력에 대해 물어보면, 분야에 상관없이 한결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 대답은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을 누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이 기초인지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기초를 만드는 일이 재미가 없어서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튼튼히 해야할 신앙의 기초
그렇다면 무엇이 신앙의 기초일까요? 흔히 신앙의 기초를 이야기하면 기도와 말씀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말씀과 기도는 신앙의 기초가 아니라, 그 기초를 만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잇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는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들, 특히 무속이나 이런 미신같은 종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열심-정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신의 의지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정화수 떠 놓고 치성을 드리면서 정성을 쏟으면 하늘이 감동해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표현한 문장이 지성이면 감천 입니다.
 
정성이 아니라 지식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정성 때문에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상대인 바알 선지자들과 비교하면 딱히 정성을 쏟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백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했을 뿐입니다. 성경은 이런 생각을 정확하게 지지합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주시면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것은 하나님을 몰라서입니다. 결코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유대인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 부분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의 서론에 해당하는 내용은 모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 그래서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 그 예수님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
 
왜냐하면 이어지는 요한 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질 말씀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삶이 어렵고 고난 가운데 살아 가더라도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다면, 극심한 박해의 시대 한가운데 살고 있어도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다면, 그 성도는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짧은 주장을 말씀을 통해 정리합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8) 요한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 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알파는 헬라어 알파벳 첫 글자이고,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처음이고, 마지막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처음도 예수님이 시작하셨고, 세상의 마지막도 예수님이 끝내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고백입니다. 요한은 에수님을 이렇게 믿었고, 이런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중요한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 질문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입니다.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요한처럼 예수님때문에 세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는다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예수님이 더 가치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붙들기 위해 다른 것들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황제를 숭배했습니다. 지중해를 호수처럼 만든 거대한 제국의 황제의 힘을 두려워하고 섬기고 복종했습니다. 그런 세상을 살았지만 기독교인들은 그 로마황제를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중심이고 목적이 되심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질문해야 합니다. 
뱀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에 마음을 빼앗긴 것처럼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좋아할 만한 일들이 너무 많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진지하게 물을 여유가 없고 바쁘기만 합니다. 너무 바빠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계시록은 그런 우리들에게 세상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살게 해줍니다. 그 마지막을 떠 올릴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줍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