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때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했다. “당신이 미디안과 싸우러 나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부르지 않고 이 일에서 제외시켰소?” 그들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2-3 그러자 기드온이 대답했다. “내가 한 일이 여러분이 한 일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에브라임이 주워 모은 이삭이 아비에셀이 수확한 포도보다 낫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미디안의 지휘관 오렙과 스엡을 여러분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여러분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그들의 마음이 진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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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과 함께 한 이들은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 300명에게 어떤 특별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함이, 하나님의 탁월함이,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이 모든 것을 진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나에게 무엇인가 구원받을 만한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나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사랑을 베푸시고,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7장의 내용을 보면 아직도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그 마음에 담대함을 주시기 위한 제안을 하나 더 하십니다. 기드온에게 쳐내려 가기가 두려우면 … 적진으로 내려가 보아라. 그리고 적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면, 네가 적진으로 쳐내려 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이에 기드온은 말씀대로 적진 가까이로 정탐을 나갑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습은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적병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을 꾼 꿈을 말하자, 옆의 적병이 답하기를 이는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에 기드온은 용기를 얻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모인 300명에게 하나님이 저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셨다고 확신가운데 고백하며 그들과 적진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게 나아간 기드온과 함께 한 300명은 칼 한번 뽑지 않고 승리를 거둡니다. 단지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며 외쳤는데 적군은 자기들끼리 자다가 놀라 깬 후에,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게 됩니다. 이에 기드온은 이스라엘에게 일어나 도망치는 적을 쫓도록 합니다. 이렇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미디안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했고, 기드온의 소집에 응한 에브라임은 요단 길목을 막고, 미디안의 두 방백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두 방백의 머리를 잘라 들고 기드온에게 나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이 기드온에게 나온 것은 전쟁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따지고 다투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드온에게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지금 그들은 기드온이 세운 엄청난 전공에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의 교만한 마음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보다 더 빛나는 기드온이 못마땅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며,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권면하였습니다.
이런 에브라임을 향해 기드온이 할 수 있는 말은 많았습니다. 어디다가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렇게 대꾸할 수도 있고,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라고 힐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직은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그러나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풀지는 못합니다. 정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 라는 기막힌 비유로 상황에 맞는 말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지금 기드온도 할 수 있는 말은 많았지만, 꼭 필요한 말을 했습니다.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이런 기드온의 말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에브라임의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잠언에 나오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는 말씀처럼, 기드온의 말은 에브라임의 흥분 상태를 누그러뜨린 것입니다. 기드온은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기드온이 원래 유순해서 그런 것 아닌가 하고 말씀을 읽어가면, 숙곳과 브누엘에게 행한 일들을 볼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라는 두 왕을 쫓아야 합니다. 이런 기드온은 누가 자신이 싸워야 할 대상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이들은 미디안과의 전쟁에 함께 한 믿음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이 싸움의 동역자인 에브라임과 싸우기 보다는 유순한 말로 그들을 달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거둔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우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누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가 참으로 은혜를 누린 사람이라면, 나를 내세우기 위하여 남과 다투는 일이 없어져야 합니다. 억지를 부리는 이들을 만나더라도 사실을 말하여 그들을 곤경에몰아넣기보다는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원칙을 깨달았던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오늘도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는 삶이 아니라 유익하고 덕을 세우는 일을 행하는 은혜 누리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