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s 2024. 6. 26. 22:30

14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네게 있는 그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게서 구원하여라. 내가 너를 보내지 않았느냐?”
15 기드온이 그분께 아뢰었다. “주님, 제가 말입니까? 제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보십시오. 저희 집안은 므낫세 중에서 가장 약하고, 저는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16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나를 믿어라. 네가 마치 한 사람을 물리치듯이 미디안을 물리칠 것이다.”
17-18 기드온이 말했다. “그 말씀이 진심이라면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말씀하신 것을 뒷받침할 표징을 제게 주십시오. 제가 돌아와 예물을 드릴 때까지 떠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19 기드온은 가서 염소 새끼 한 마리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많이 준비했다(밀가루를 20리터도 더 썼다!) 그는 거룩한 식사로 바구니에 고기를 담고 냄비에 국을 담아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로 다시 갔다.
20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했다. “고기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가져다가 저 바위 위에 놓고 그 위에 국을 부어라.” 기드온이 그대로 했다.
21-22 하나님의 천사가 들고 있던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빵에 댔다. 그러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빵을 살라 버렸고, 그 사이에 하나님의 천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하나님의 천사인 것을 알았다! 기드온이 말했다. “어쩌면 좋습니까! 주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천사를 대면하여 보았습니다!”
23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안심시키셨다.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24 기드온은 그곳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 제단을 ‘하나님의 평화’라고 불렀다. 아비에셀의 오브라에 있는 그 제단은 오늘까지 그렇게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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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성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한번 일어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두 번 일어났으면 두 번 일어난 게 아니라 사건에 방향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살면서 보면 몰라서 한 범죄나 실수보다는 내 삶이 그렇게 방향지워져서 그랬던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죄짓고, 게으름부리며, 귀찮아서 그저 쉽고 편한 방향으로만 행동해서, 자꾸 반복되는 나쁜 습관들이 있음을 보게됩니다. 이런 나의 삶이 이제는 좀더 나은 방향으로 믿음의 일들로 방향이 정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특별히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실 때, 그 이름에는 하나님의 기대와 계획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꾸어 주신 것도,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주신 것도 그렇고, 본문 속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르신 것도 그렇습니다. 뿐만아니라 항상 악하고 게을러서 죄에 대하여 자꾸 넘어지는 나를 성도라고 칭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시는 것도, 그냥 듣기 좋은 호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와 계획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으로 그런 결론을 만드실 의지를 담아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런 기대와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자꾸 무엇인가를 하려고 합니다. 무엇이라도 해야 만 할 것 같은 부담을 갖습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분명 나는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닐 때, 성경의 표현으로는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도... 계속해서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자기 의로 가득찬 - 내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방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랴고 하는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내가 무엇이 되려고, 내 힘으로 어떤 수준이 되려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을 좀더 알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알게 된 기드온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기대를 품고 계획을 가지고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드온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아니었습니까 항변합니다. 이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기드온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기드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제가 말입니까? 제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보십시오. 저희 집안은 므낫세 중에서 가장 약하고, 저는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기드온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너를 보낼 것이다 말씀하시는데, 기든온은 보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집안과 자신의 지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이루실 지에 대한 기대는 없고 자신의 계산과 지식으로 그 일을 가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의 가진 힘으로 하라고 하셔서 그런 것 아닌가 싶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이미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여기서 큰 용사라는 호칭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떼어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기드온은 혼자서는 결코 큰 용사가 아닙니다. 혼자서는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런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비로소 큰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다시 말씀해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나를 믿어라. 네가 마치 한 사람을 물리치듯이 미디안을 물리칠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홀로있는 나는 거룩한 성도가 아니라 솜털 하나까지, 숨결 하나까지 죄성에 물들지 않은 구석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있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나를 가려 놓으시니까 성도가 되고, 자녀 되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소심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큰 용사가 되는 것처럼, 나는 죄로 꽉찬 존재이지만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동거함으로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어떻거든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잘 정리해 주신 말씀이 요한복음 15장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붙어있으면 열매는 맺어집니다.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나는 종종 하나님께 무엇인가가 해드리기 위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무엇인가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을 떠납니다. 내 공로를 붙들고 예수님을 놓을 때가 있습니다. 내 열심을 붙들고 은혜를 놓을 때가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증거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기드온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면 지금 예물을 준비할테니표징을 보여달라고구했습니다. 이 예물을 드리는 장면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내용을 잘 요약해 주는 그림입니다.

 

나는 이렇게 제물을 펼쳐놓으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바위 위에 올려놓은 예물에 지팡이를 대면 붙든 지팡이에서 불이 나와 예물을 불사를 것이고, 이렇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손에 잡은 지팡이를 내밀어 바위 이에 놓은 예물에 그 끝을 댑니다. 그러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예물을 불사릅니다. 지팡이는 붙들고 계셨지만 지팡이가 불을 뿜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지팡이의 역할은 손에 붙드시는대로 붙들려서 제물에 가져다 대면 제물에 닿고, 바위에 가져다 대면 바위에 닿는 것이 전부입니다.

  

나는 나를 통해 불이 나가야 되된다고 생각해서, 내가 능력을 갖추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준비되어야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드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그냥 붙드시고 모든 일은 하나님이 진행하실 것이라서 나에게 지금 하나님의 붙들려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저 붙드시는 손길에 순종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나를 붙드시는 것일까요? 그냥 아무나 붙드시면 되는데, 나를 붙드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잘나서도 아닙니다. 내가 가진 능력이 필요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해서입니다. 나의 능력이나 내가 가진 무엇이 필요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그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바르게 볼 수 있도록 나를 붙드시는 것입니다.

 

지금 기드온이 그랬습니다. 자신이 만난 이가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자신이 부정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정한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았으니 곧 죽게 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위로하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샬롬 이라고 부릅니다.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평강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상황을 통해 나와 깊은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문제를 통해 나를 찾으시고, 상황 속에서 나를 붙드십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그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 손에 붙들린 채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닙니다.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는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렇게 만난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된 모습을 깨닫게 되고, 그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된 만큼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친밀함과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