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후, 다윗은 블레셋 사람을 크게 쳐서 굴복시키고 그 지역을 지배했다.
2 그는 또 모압과 싸워 그들을 물리쳤다. 그는 무작위로 그들 가운데 삼분의 이를 택해 처형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살려 주었다. 이후 모압 사람은 다윗의 통치를 받으며 조공을 바쳐야 했다.
3-4 다음으로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통치권을 회복하러 가는 길에 다윗은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을 물리쳤다. 다윗은 그에게서 전차 천 대와 기병 칠천 명, 보병 이만 명을 빼앗았다. 그는 전차를 끄는 말 백 마리만 남기고, 나머지 모든 말의 뒷발 힘줄을 끊었다.
5-6 다마스쿠스의 아람 사람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오자, 다윗은 그들 이만이천 명을 모두 죽였다. 그는 아람-다마스쿠스에 꼭두각시 정부를 세웠다. 아람 사람은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쳐야 했다. 다윗이 어디로 진군하든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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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대적들
오늘 말씀에서는 지금까지 근동지역 변방에 위치했던 이스라엘이 승승장구하며, 근동지역의 중심에 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정착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전쟁은 방어전이었습니다. 주변의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면 그때야 군대를 소집하여 맞서 싸우는 형태였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서 겨우 상비군 - 항상 무장하고 있는 군대를 꾸렸지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에 따라 움직인 전쟁을 제외하면 역시 대부분 방어를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평화적이라서 방어전만 치른 것이 아니라 주변에 비해 약했기 때문인 이유가 컸습니다. 특히 삼손 이후로 비옥한 해안 평야를 차지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은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앞선 철기문명을 받아들인 블레셋의 무기는 아직 대장장이조차 없던 이스라엘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서 블레셋을 침공을 격파하며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바로 옆에 강한 적-블레셋을 두고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이스라엘에게는 없었습니다.
블레셋을 꺽다
그런 블레셋이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1절에 다윗이 블레셋으로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렇게 꺾여버린 블레셋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상대가 되지 못하게 됩니다. 블레셋이라는 옆구리의 가시를 제거한 다윗은 이어서 모압을, 그리고 아람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소바를, 또 소바를 도우러 온 아람의 다메섹을 정벌하고 다윗의 통치아래에 둡니다. 거기에 더해서 암몬과 아말렉, 에돔까지 다윗의 통치영역이 넓어졌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면서 말씀은 거듭해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항상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참 마음이 가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가는 곳마다 이기게 된다면… 우리 식으로 말해서 하는 일마다 성공을 맛보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너무 좋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정작 나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가는 곳마다 이기고, 하는 일마다 성공하기 보다는… 가는 곳마다 눌리고 깨지고, 하는 일마다 어려움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다윗만 편애하시는 것인가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렸다지만, 좀 심하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떤 것들 때문에 다윗은 이런 은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다윗이 잘 알았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이기는 것이 자기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군대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다윗이 아는 것은 그냥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셔서 적의 마병 1천7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행한 일은 그렇게 얻은 전마 1천7백을 다 폐기하고 오직 병거 100대의 말 즉 200마리만 상징적으로 남긴 것입니다. 당시 병거는 최강의 무기였습니다. 애굽은 병거를 힘입어 유다 말기까지 앞으로400여 년뒤까지 강국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막강한 무기를 이스라엘이 갖지 못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은 말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필요한 말을 전적으로 주변 나라에서 수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짐을 싣는 말이 아닌 전쟁에 쓸 군마를 수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런 군마를 1,700 필 노획하였습니다. 자신의 군대를 최강병기로 무장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군마들의 다리 힘줄을 잘랐습니다. 힘줄이 잘린 말은 이제 전장을 달릴 수 없게 됩니다. 전략병기 군마에서 일반 노동용 말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을 치루는 군대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놀라운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것은 … 이것은 특별히 신명기 17장에서 이스라엘의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행위입니다. 다윗은 말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이전 왕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서도 진멸할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붙들려다 하나님을 놓쳤습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것들은 무엇이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어있는 손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승리나 전리품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했다
다른 하나는 다윗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입니다.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노획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승리를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승리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이 전리품을 목적 삼아서 전쟁을 치르고 있지는 않는다 의미입니다. 다윗의 전쟁의 목적이 전리품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승리가 아니면 왜? 싸우냐고요 ?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 하나님의 통치가 확장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14절까지는 숨가쁘게 전쟁을 설명하던 말씀이 끝나고, 잠깐 호흡을 고르는 순간 이어지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승리의 거친 호흡때문에 빠트리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빠트려서는 안되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전쟁을 치룬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나타내기 위함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간다는 것은 무조건 싸우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그 자리에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통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승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고 싸운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램과 기대를 잘 아는 다윗은 단지 승리를 목적 삼고 전리품을 목표삼아 싸울 수 없었습니다. 승리로 넓혀진 통치 영역에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나타내는 것을 목표삼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이기고 있습니다. 언제 싸우든지 항상 이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승리에 도취되지 않습니다. 승리의 노획물들로 인해 열광하지도 않습니다. 또 더 큰 승리를 이루려고 고심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의 관심은 하나님의 통치가 자신을 통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자신부터 하나님의 통치아래에 살려고 노력합니다.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원칙 - 공평과 정의를 어떻게 더 널리 펼쳐낼 수 있을까 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윗에게 항상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다윗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것이 다윗의 승리했던 비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자들이 살아가야 할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원하십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낼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누릴 승리를 목적으로 합니다. 하나님을 통해 누린 승리의 노획물을 목표삼아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승리하지 못합니다. 항상 이기는 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순종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기 원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기대를 이해하고, 온 몸으로 삶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려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오늘도 동일하게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