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 다윗 왕이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다. “내 주 하나님, 제가 누구이며 저의 집안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이 자리에 이르게 하셨습니까? 그러나 앞으로 있을 일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주 하나님, 주께서는 제 집안의 먼 앞날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장래 일을 엿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 앞에서 감히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 하나님, 주께서는 제 실상을 아십니다. 주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것은, 저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주의 어떠하심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께서 그것을 제게 알려 주셨습니다.
22-24 주 하나님,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주님 같은 분이 없습니다. 주님과 같은 하나님이 없습니다. 주님 외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우리 귀로 들은 그 어떤 이야기도 주님과 비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땅에 하나뿐인 나라,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당신을 위해 그들을 구해 내셨습니다(그 일로 주의 이름을 널리 알리셨습니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내심으로 여러 민족과 그 신들을 사방으로 내쫓으시며 크고 두려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주께서 자신을 위해 한 백성—주님 소유의 이스라엘!—을 영원한 주의 백성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주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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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깊어지는 믿음
감사하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예의 바른 행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감사하는 것은 적극 권장되는 덕목입니다. 외국 어느 유명 방송인은 매일 그 날 하루동안 일어난 일 중에서 감사한 일을 다섯 개씩 찾아 적는 일을 10년간 계속했는데, 그것이 자신의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한 때 감사일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많은 블로거들이 감사일기를 소개하고, 감사일기 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는 좋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권할 만한 일이고 나의 미래를 바꾸어 놓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감사를 믿음과 연결시키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믿음과 연결된 감사는 단지 좋고 의미 있는 일을 넘어서 내 믿음의 깊이를 달라지게 만들고, 하나님에 대한 내 생각의 수준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깊은 믿음으로 이끄는 감사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감사를 떠올릴 때, 무엇인가 시도한 일이 좋은 결과를 얻었거나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와 같이 잘되고 좋아지는 상황을 떠올립니다. 바꾸어 말하면 좋은 결과 앞에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행하는 일이고, 깊어지는 믿음과 연결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좋지 못한 결과나 바라던 일이 실패했을 때 억지로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감사라는 것은 자발적인 행위이지 억지로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깊은 믿음으로 이끄는 감사는 어떤 상황이나 조건과 연결되는 행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상황이나 조건이 아닌 다른 이유로 감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인생의 사건들 속에서,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다른 이유때문에 감사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윗을 통해, 깊은 믿음으로 이끄는 감사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다윗을 통해 생각해 볼 감사
특별히 다윗을 통해 감사를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다윗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리에서 복음의 사도가 된 바울, 포로로 끌려갔지만 제국의 3번째 통치자가 되었던 다니엘, 노예에서 총리로 인생 역전을 이룬 요셉, 140년이 넘는 험난한 인생의 길을 살았던 야곱 등 다양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볼 다윗은 이들 중 그 누구보다도 더 파란만장한,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다윗은 출생부터 자매를 제외하고도 8형제나 되는 집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형들이 하기 싫은 온갖 궃은 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찾아온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이 일은 오히려 형제들의 질투를 받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양식을 전해주러 간 전쟁터에서 골리앗을 이겨 한 순간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으나, 개선 행렬 앞에서 부른 여인들의 노래로 인해 사울 왕의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윗을 용납하지 못한 사울 왕은 결국 다윗을 죽이려고 나섰고, 나라 전체를 동원해 다윗을 잡으려는 사울 왕을 피해서 10여년을 도망자로 광야를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어떤 날은 미치광이 행세로 목숨을 부지 헸고, 어떤 날은 친절을 베풀어 주고 오히려 주인에게 도망친 노예라는 모욕도 당했습니다. 이런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국경을 넘어 적대국인 블레셋 땅으로 망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울이 죽고 난 후, 유다지파는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안정을 누리게 된 다윗의 꿈
이 후로도 다윗의 인생에는 밧세바와 압살롬으로 인해 굴곡이 더 있지만, 오늘 본문은 그런 굴곡을 더 겪기 전의 내용입니다. 왕이 된 다윗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대적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내부적으로 통치 질서를 확립하며 나라는 평온케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안정을 누리게 된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옵니다. 그렇게 다윗 성 안에 언약궤를 모시게 되자, 다윗 안에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생각을 나단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의 생각은 다윗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장에서 피를 많이 흘린 다윗의 손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다윗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다윗 뿐 아니라 다윗의 후손들이 계속 왕노릇 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들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 앞으로 나아간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 앞에 앉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윗은 지금 대략 10년 넘게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서 10년이 넘게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것입니다. 그런 다윗이 지금 자신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다윗은 그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의 언약궤로 나아가 그 앞에 앉은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던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 앞에 앉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주 하나님, 제가 누구이며 저의 집안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이 자리에 이르게 하셨습니까? 그러나 앞으로 있을 일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주 하나님, 주께서는 제 집안의 먼 앞날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장래 일을 엿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 앞에서 감히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지금의 모습을 이전의 처지와 비교하며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또 내 집안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나를 이러한 자리에까지 오르게 하셨습니까?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있기에, 자신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언약궤 앞으로 내려와 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그 귀한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 주께서는 제 실상을 아십니다. 주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것은, 저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주의 어떠하심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께서 그것을 제게 알려 주셨습니다.
다윗이 감사하는 이유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은헤에 감동하였습니다. 이전 날의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 보니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내가 누구이며 또 내 집안이 무엇이기에 …라고 되뇌며 감사하고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감사는 다윗에게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주신 놀라운 약속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윗의 감사는 그것을 넘어 자신의 옛 모습과 오늘을 비교하는 것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받을 자격 없는 자신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향하고 있습니다. 자신 곁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를 감사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주님 같은 분이 없습니다. 주님과 같은 하나님이 없습니다. 주님 외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우리 귀로 들은 그 어떤 이야기도 주님과 비할 수 없습니다. 이런 다윗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떠셨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넘어,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다윗을 보며 하나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런 다윗이기에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호칭으로 부르신 것이 아닐까요?
내가 받은 놀라운 은혜와 사랑
여러분은 지금 무엇으로 인해 감사하는 자리에 계십니까? 여러분의 감사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나가고 있습니까? 분명 다윗은 놀라운 은혜를 누렸습니다. 광야를 헤매며 도망치던 자리에서 왕이 되는 큰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윗이 누리는 은혜와 복과는 차원이 다른 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 죄인의 자리에서, 진노의 자리에서 이제는 사랑의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하나님께 놀라운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받은 약속보다 더 특별한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다윗도 받지 못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누린 다윗은 지금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으로 내려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받은 바 은혜를 헤아리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윗보다 더 놀랍고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누린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이런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송명희 시인의 시, [사랑하고 싶어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내 마음 다하여
모든 것 다하여
그 무엇보다 더
그 누구보다 더
내 마음 뜨겁도록
타오르는 불길보다 더 뜨겁게
그리하여 그리하여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녹기까지
사랑하고 싶어라
변함없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