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s 2023. 1. 16. 05:00

16-18 베냐민 땅 게바(기브아) 후위에 배치되어 있던 사울의 초병들이 적진을 휩쓸고 있는 혼란과 소동을 목격했다. 사울이 명령했다. “정렬하고 점호를 실시하여, 누가 여기 있고 누가 없는지 확인하여라.” 그들이 점호를 해보니,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드는 병사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8-19 사울이 아히야에게 명령했다. “제사장의 에봇을 가져오시오.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봅시다.” (당시에는 아히야가 에봇을 맡고 있었다.) 사울이 제사장과 대화하는 동안 블레셋 진영의 소동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러자 사울은 이야기를 중단하며 아히야에게 “에봇을 치우시오” 하고 말했다.

20-23 사울은 즉시 군대를 불러 모아 싸움터로 나갔다. 적진에 이르러 보니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칼을 마구 휘두르며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있었다. 일찍이 블레셋 진영에 투항했던 히브리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이제 그들은 사울과 요나단의 지휘를 따르며 이스라엘과 함께 있고자 했다.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도 블레셋 사람이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나와서 추격에 합류했다. 그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굉장한 날이었다!

싸움은 벳아웬까지 번졌다. 이제 온 군대가—만 명의 강한 군사가!—사울의 뒤에 있었고, 싸움은 에브라임 산지 전역의 모든 성읍으로 퍼져 나갔다.

24 그날 사울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 “저녁 전, 곧 내가 적들에게 복수하기 전에 무엇이든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군사들에게 말한 것이다. 군사들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25-27 들판 곳곳에 벌집이 있었지만, 그 꿀을 맛보려고 손가락을 대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저주를 받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의 맹세를 듣지 못한 요나단은 막대기 끝으로 꿀을 조금 찍어 먹었다. 그러자 기운이 나고 눈이 밝아지면서 새 힘이 솟았다.

28 한 군사가 그에게 말했다. “왕께서 ‘저녁 전에 무엇이든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하고 군 전체를 상대로 엄숙히 맹세하셨습니다. 그래서 군사들이 맥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

 

사울이 배워야 했던 것은 …

 

상황과 조건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요나단의 믿음으로 인해 전쟁 분위기가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본진에서 보기에도 블레셋 진영에 문제가 생긴 것이 느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분위기가 치닫자, 블레셋 사람들 편에 서서 싸움터에 나왔던 히브리 사람들이 돌이켜 이스라엘 편을 들게 됩니다. 또 전에 에브라임 산간지방으로 들어가 숨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두 뛰어나와 싸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반전된 전투에서 이제 이스라엘이 도망치는 블레셋을 쫓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4절 말씀에는 이 상황이 시작되기 전, 사울이 병사들에게 맹세시킨 내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저녁 적들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맹세였습니다. 

 

왜 사울은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들에게 이런 맹세를 요구했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는 왜? 그랬는지가 정확하게 기록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전체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그 안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에 사무엘을 기다리던 사울이 직접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의 진영에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제사장 아히야가 함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사울이 직접 제사들 드린 것은 제사장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자신이 직접 제사를 진행하고,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함께 한 백성들에게 금식을 요구한 것입니다. 지금 사울은 예전에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과 행한 일을 떠올리며 그것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런 승리를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마 사울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블레셋을 무찌른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이전까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블레셋을 처음으로 크게 이겼던 전쟁이기도 했고, 많은 이스라엘이 함께 했기 때문에 사울 주변에도 당시 그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사울은 자신도 사무엘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을 꿈꾸며 자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사울은 이제 블레셋과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사울의 마음에 가장 넘어서고 싶은 큰 벽은 미스바 전쟁이었고 그 전쟁을 이끈 사무엘이었습니다. 사울 자신도 사무엘이  평생을 두고 받았던 그런 존경을 받아 누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고 따르거나, 그 사람을 넘어서고 싶어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태도입니다. 아니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무엘이 가진 최고의 강점이 무엇입니까? 여러가지로 표현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살아가는 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런 내면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이 외형만을 배우고 따르고 싶어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 19절에 블레셋 진영의 흔들림을 보고 사울은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블레셋이 더 크게 요동하는 것이 보이자, 사울은 언약궤를 가져오지 말도록 하고 자신이 직접 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보다는 상황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울이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살아가는 사무엘을 흉내내는 것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울의 태도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갑니다.

 

모르는 것, 부족한 것, 연약한 것… 이런 것들은 약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약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My power is perfected in weakness)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면 나의 모자람이 결코 약점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부족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다만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사울처럼 겉모습 흉내 내는 것으로 약점을 가리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강함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세웠던 결심 벌써 지키지 못하고 무너진 것들이 있다면, 끙끙거리며 매달려봤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면,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그것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며 사는 이들을 보며 외형을 따라하려고 하기 보다는, 모든 하나까지도 맡겨드리는 삶의 모습을 배워가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도 나의 삶의 중심에  사람들에게 말 못할 나의 연약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런 시간이 자리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 나의 속에서도 약한데서 완전케 되는 하나님의 능력이 누려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