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 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인해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은 내게 여러분의 믿음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에 관한 복된 소식 곧 메시지를 전할 때에, 내가 사랑하여 예배하고 섬기기 원하는 하나님은 아십니다. 내가 기도 중에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사실은 늘- 여러분을 보러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그분께 기도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간절함도 더 깊어집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선물을 직접 전해 주고, 여러분이 더욱 강건해져 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주려고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줄 것 못지않게 여러분도 내게 줄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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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편지를 쓰기 6–8년 전,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분쟁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는 이런 유대인들의 소동에 질려서(평소에도 유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로마인의 정서에 이 일이 더해져서)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이때 추방되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습니다(행 18:2). 그 후 클라우디우스가 죽고 네로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유대인들은 로마로 귀환을 허락받았습니다.
이 일은 훗날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유대인 공동체의 관계에 영향을 끼쳤고, 평소에 유대인을 답갑게 여기지 않던 로마인들이 그리스도인을 대하는 시선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추방당한 로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교회)는 한동안 이방인으로 만 구성되어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 시기에 로마 교회에는 유대교 율법들이 아무런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제 유대적 율법주의도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혼란 없이 지내던 로마교회는 다시금 유대 율법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어떻게 연결하고 조율할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바울 사도의 편지가 도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이 편지에서 로마 교회가 겪고 있는 혼란을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8절에서 로마 교회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른 것들이 아니라 바로 로마 교회가 믿음 안에 서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은 유대 율법적 구분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복음은 누구도 결코 차별하거나 구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 복음을 들은 이들에게 예수님을 통해 이전의 삶의 방식과 다른 삶을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 안에서는 구분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바로 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모든 것들로 부터 떼어내서 살아가는 사도였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에게 로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달라진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소식은 감사한 소식이었고, 로마 교회가 보이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런 로마교회를 방문하고 싶어했고, 로마 교회 성도들과 더 깊은 믿음의 삶에 관해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의 열망과 다르게 로마 교회를 아직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바울 사도가 결코 로마 교회에 가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지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런 바울 사도 안에 담겨 있는 마음은 바울 사도의 기도 때마다 드려지는 간구에서도 나타납니다. 내가 기도 중에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사실은 늘- 여러분을 보러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그분께 기도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방문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간절함으로 여러분을 만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것입니다.
이렇게 간절히 로마 교회에 가고싶어 하는 것은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 성도들과 하나님의 선물(신령한 은사)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은사를 통해 더 깊은 믿음을 누리게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결코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 무언가를 주러 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하는 그 자리를 통해 바울 사도 자신도 누려야 할 더 큰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선물을 직접 전해 주고, 여러분이 더욱 강건해져 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주려고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줄 것 못지않게 여러분도 내게 줄 것이 많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 놀랍습니다.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 사도조차 성도들과의 나눔을 통해 무엇인가 누려야 할 은혜가 따로 존재한다면,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떨까요? 바울 사도조차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으로 격려를 받으며 사는 존재였다면, 나는 다른 성도들과의 나눔이 없이, 그들의 믿음으로 인한 격려가 없이 온전히 살 수는 있는 것일까요?
바울 사도가 전한 말씀을 기억한다면, 누군가에게 답을 주려고만 하는 내 삶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하루의 삶을 통해 잘난 척 아는 척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들기보다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힘겹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겸손히 바라보며 위로를 누리고 도전을 받는 은혜의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톰 라이트, 모든 사람을 위한 로마서, trans. 신현기, 개정판., vol. 1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9–2021)
팀 켈러, 당신을 위한 로마서, trans. 김건우, 초판., vol. 1, 당신을 위한 시리즈 (서울: 두란노서원, 2014)